올해 들어 원-엔 동조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동조화로 인해 대일 수출경쟁력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외여건 변화에 따른 거시경제 불안정성 심화, 중국 등 통화가치가 달러화에 연동되어 있는 국가들에 대한 수출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
요즘 들어 원화의 달러화 환율을 예측할 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엔화의 달러화 환율을 전망하는 일이다. 원/달러 환율이 엔/달러 환율의 등락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절상되면 원화 역시 달러에 대해 절상되고 엔화가 절하될 경우 원화 역시 절하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금년 들어서는 두 환율의 움직임이 방향 뿐만 아니라 크기에 있어서도 매우 유사해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5% 절상되면 원화도 5% 가량 절상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이후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00원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것이 요즘 들어 흔히 언급되는 원/달러 환율의 엔/달러 환율 동조화 현상으로 <그림 1>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림 1>은 시장평균 환율제를 시작한 91년부터 2002년 9월 하순까지의 원/달러 및 엔/달러 환율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엔화의 경우 91년부터 95년 4월까지 꾸준히 강세를 보여온 데 반해 원화는 93년까지는 오히려 약세를 보인 후 94년부터 95년 7월 말까지 완만한 강세로 전환, 엔화환율과의 동조화가 시작됐다. 이후 외환위기 이전까지 원화환율은 엔화환율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상승했고 외환위기 기간중 다소 차별화하는 모습을 보인 뒤 외환위기 이후 99년 말까지 두 통화 모두 달러에 대해 강세를 보였다. 2000년부터 2002년 3월까지는 엔화와 원화 모두 달러에 대해 약세를 나타냈으며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급격한 강세를 띤 후 7월 하순 이후 다시 완만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엔화 1% 절상시 원화 0.94% 절상
원화환율을 포함한 국내금융변수가 해외금융시장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동조화 현상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특징은 동조화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표 1>에 보이는 바와 같이 동조화 추이를 나타내는 지표인 원-엔 환율 상관계수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마이너스 수치를 보이다가 90년대 중반까지 빠르게 높아졌다. 이어 1997년과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감소했다가 이후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으며 올들어 상관계수가 0.97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동조화 현상은 엔화환율이 1% 변할 때 원화가 평균적으로 변화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반영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90년대 초반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엔화환율 반영도는 2000년대 들어 크게 증가, 2002년의 경우 0.94로서 엔화환율이 1% 상승(하락)할 때 원화환율이 0.94% 상승(하락)함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원-엔간 뿐만 아니라 원-유로 환율간에도 높은 상관계수가 발견돼 전세계적인 대 달러 환율 동조화 현상이 뒷받침되고 있다. 99년만 해도 마이너스를 보이던 원-유로 동조화율은 2000년을 고비로 플러스로 돌아선 이래 올해에는 0.98의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90년대 이후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경제와 우리경제의 여건이 현격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에 대해 매우 높은 동조화 경향을 보임으로써 자연히 우리나라와 일본간 실물경기 사이클과 원/엔 환율의 움직임이 별다른 관련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그림 2>에서 한일 양국의 GDP 성장률 격차와 원/엔 환율이 유사한 패턴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지나친 동조화로 인해 두 변수간의 관계를 찾기가 어렵다.
동조화는 시장 불안기에 심화되고 비대칭적
둘째, 환율 동조화의 또 다른 특징은 비대칭성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엔화의 절상기보다 절하기에 동조화의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책당국이 수출경쟁력을 의식해 엔화절상에 기인한 원화절상 방어에 나섰으나 엔화 절하기에는 원화절하를 상대적으로 용인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원화절상기에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가 늘어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절하기에는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의 증감이 혼재되어 원화절상을 방어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상황이 반전, 엔화의 절하기보다 절상기 때 동조화의 정도가 다소 심하게 나타난다. 99년부터 2002년 8월까지의 데이터 분석 결과 엔화 절하기의 동조화율(상관계수)은 월평균 0.23인데 비해 엔화 절상기의 원-엔 동조화율은 0.38에 달했다. 이것은 외환위기 이후 완전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서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이전보다 덜하고 우리 경제의 상황이 일본보다 낫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엔화절상기에는 우리경제의 양호한 상황이 반영되어 엔화와 비슷한 수준으로 절상되나 일본경제의 취약성에 기인해 엔화가 절하될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덜 절하된다는 것이다.
셋째, 원-엔의 동조화는 외환시장이 불안정할 때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은 환율 변동성의 확대로 나타난다. <그림 3>과 같이 환율의 변동이 심할 때 동조화율은 높게 나타났는데 2000년 이후 원-엔 동조화율과 환율변동폭 간의 상관계수는 0.4에 달한다.
자본거래 자유화 진전 동조화 원인
그렇다면 왜 원화환율과 엔화환율 간에 동조화가 일어나며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을까?
첫째, 한일 두나라간에 해외시장에서의 경합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엔화가 달러에 대해 5% 절상될 경우 원화가 5% 미만 절상된다면 원화가 엔화에 대해 절하되는 것이며 이에 따라 미국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게 되고 이는 국제수지 개선 요인이 된다. 따라서 원화가 절상되게 되는데 국가별 수출 경합도를 나타내는 RCA 지수를 보면 95년의 경우 전기전자와 철강 등 우리의 대미수출 1위와 5위 품목에서(대미수출 비중 48.2%) 한·일간 경합도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2002년(1~7월)에는 전기전자와 기계류, 자동차 등 우리의 대미 수출 1, 2, 3위 품목 모두와 10위 품목인 편직물류(대미수출 비중 71.9%)에서 경합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수입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 변화도 동조화의 원인이 된다. 일본은 우리나라 제1의 수입선이므로 (2001년 기준 전체 수입의 19.2%) 엔화환율 절상률이 원화보다 클 경우 우리경제의 수지개선 효과가 야기되고 이는 결국 원화의 절상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외환 및 자본거래의 자유화도 동조화 추세의 강화에 일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엔화환율 변화의 국내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외환시장에 전달되는 속도가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이동에 대한 제한이 존재했던 과거에는 엔화환율이 원화환율에 미치는 주된 경로가 무역수지였다. 따라서 엔화가 절상되면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개선되어 원화절상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 등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엔화환율의 변화가 원화환율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예상을 즉각 반영해 행동함으로써 엔화와 원화간의 동조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셋째, 우리나라 외환시장 자체의 한계도 지적될 수 있다. 2002년 1/4분기 중 국내 일평균 외환거래 규모는 34.8억달러에 불과해 2,00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되는 일본 외환시장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로 인해 엔화시장과 독립적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장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일본의 외환시장에 직접적으로 의존한다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시장이 급변하며 향후 전망이 불투명할 때 시장참가자들이 아시아 지역내 최대 금융센터인 일본 외환시장의 동향을 참고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직은 이른 감이 있지만 이는 동아시아 통화협력 초기단계의 현상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듯 싶다.
대 중국 경쟁력 약화가 문제
환율 동조화의 효과는 크게 거시경제와 국제수지, 그리고 금융시장 효율성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지나치게 환율이 동조화될 경우 실물경제 여건과 상관없이 환율이 결정됨으로써 대외여건에 의해 우리 경제가 좌우될 수 있다. 엔화 절하기에 원화환율이 엔화환율과 비슷하게 절하될 경우 제 3국에 대한 수출경쟁력 제고 효과는 있으나 물가와 금리 상승 등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반대로 엔화 절상기에 원화환율이 비슷한 폭으로 하락하면 수출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엔화가 달러에 대해 강세를 보인 99년의 경우, 반영도가 0.16이라는 것은 엔화환율이 1% 절상되었을 때 원화는 0.16%가 절상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엔화의 1% 절상 시 원화가 달러에 대해서는 절상되지만 엔화에 대해서는 약 0.84%의 절하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처럼 반영도가 0.9를 넘을 경우 엔화에 대한 절하효과는 거의 없는 반면 중국이나 홍콩, 말레이시아 등 미 달러화에 고정되어 있는 국가에 대해 엔화환율 하락폭 만큼이나 경쟁력이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편 미국이나 일본 외환시장의 변화에 대해 국내 원화환율 조정과정이 즉각적이고 단기화되었다는 면에서 그만큼 국내외환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환율이 실물경제 여건에만 의존한다면 우리 경제와 일본 경제의 실상이 제대로 반영될 경우 원화와 엔화는 동조화보다는 차별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기본적으로 대외요인에 영향을 크게 받는 소규모개방경제라는 점과 전면적인 외환 및 자본자유화의 진전, 그리고 국제상품시장에서의 경쟁 심화 등을 고려한다면 원-엔 동조화는 현재 수준보다는 덜할지라도 어느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동조화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이 필요한데 엔화환율 변동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대미수출의존도와 대일경합도가 높은 수출구조를 지역별, 상품별로 다변화한다거나 미국 혹은 달러에 고정된 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 것들이 장기적 과제가 될 것이다. 아울러 환율동조화가 자본자유화의 결과로서 자본유출이 빈번히 이루어지면서 심해진 측면이 있으므로 직접투자 등 장기성 외국인투자자금의 유입 유인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