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유동성 여부를 측정해 본 결과, 현재의 시중유동성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동성과 물가상승과의 관계도 최근 약화되고 있다. 다만, 단기부동화 정도는 아직 높은 수준이어서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남아 있다.
지난 3월 총유동성(M3) 증가율이 13%를 기록하며 한국은행의 연간 감시목표인 8~12% 기준을 넘어선 이래로 시중유동성의 과잉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저금리 기조 하에서 급증한 가계대출로 인해 유발된 과잉유동성은 이후 부동산경기 과열과 가계부실화의 원인으로 지적되었고 앞으로 물가상승 압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경기둔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통화증가율이 하락하고 물가도 안정세를 유지함에 따라 시중유동성 상태를 과잉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아래에서는 시중유동성과 관련된 다양한 지표들을 이용하여 시중유동성 과잉 여부와 물가상승과의 관계, 시중유동성 수준 변화와 단기부동화 등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유동성 과잉 상태인가
시중유동성 상태의 과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초과유동성(Excess Liquidity)을 측정해 보았다. 초과유동성은 시중유동성 수준이 실물경제 활동 수준에 비하여 과도한지의 여부를 파악하는 지표다. 통화구성 요소별 통화량에 거래유통속도의 대용치로서 예금 종별 회전율을 곱하여 계산된 통화유통량 증가율에서 산업생산지수 증가율 등으로 측정되는 실물경제활동 증가율을 차감하여 산출된다. 초과유동성이 (+)를 나타내거나 일정기간 동안 상승하는 경우 시중유동성이 실물경제의 확대 속도보다 빠르게 증가함으로써 시중유동성이 상대적으로 풍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초과유동성이 (-)인 경우 시중유동성의 증가 속도가 실물경제 확대 속도에 미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총통화(M2)를 대상으로 최근의 초과유동성 추이를 살펴본 결과, 상당 기간 (-) 상태를 유지하던 초과유동성은 지난해 7월에 (+)로 전환된 후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올해 5월에는 17.8%까지 상승하였다(<그림 1> 참조). 높아진 통화증가율로 인해 과잉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이후 초과유동성은 7월에 다시 (-)로 반전되었고 8월에는 -6.8%까지 하락하였다. 이 기간 동안 산업생산지수 증가율은 5월 7.7%, 8월 8.5%로 증가세를 유지한 반면, 통화유통량 증가율은 5월 25.5%에서 8월 1.7%로 급감한 때문이다. 9월에는 감소하던 총통화증가율이 12%를 넘어서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반면, 산업생산지수 증가율은 3.4%로 떨어져 초과유동성이 2.5%를 기록하였다. 결국, 최근 수개월간의 초과유동성 추이로 미루어 보면 현재의 시중유동성 상태는 과잉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유동성 증가는 물가상승을 유발하는가
일반적으로 유동성이 과도하게 공급되어 초과유동성이 증가하면 총수요 증가를 통하여 물가상승이 유발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과잉유동성과 물가상승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초과유동성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간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림에서 1998년까지는 초과유동성과 물가상승률이 거의 동행하는 움직임을 나타내어 초과유동성이 증가하는 경우 물가상승률도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그러나 1999년 이후부터 초과유동성과 물가상승률은 일정한 관계가 없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의 기간 동안 0.82에 달하던 양자 사이의 상관계수는 1999년 이후 -0.09로 낮아졌다. 실제로 초과유동성이 증가하였던 지난해 4분기 이후 물가상승률은 도리어 낮아졌다.
이는 경제 및 금융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물가가 초과유동성 뿐만 아니라 환율과 같은 대외변수의 영향도 크게 받기 시작한 구조적인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과 물가상승률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거의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환율과 물가가 최근 수년간 매우 유사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음이 확인된다(<그림 2> 참조). 환율과 물가 사이의 상관계수를 구해 본 결과, 외환위기 이전에는 -0.71로서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였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0.73으로 높아져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유동성 증가가 반드시 물가상승을 유발한다는 단순한 논리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시중유동성 수준은 어떻게 변했나
현재의 시중유동성 수준 변화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가중통화지표(Divisia Index)를 살펴보았다. 가중통화지표는 통화지표를 구성하는 구성자산별로 통화성(moneyness) 즉, 유동성을 기준으로 각기 다른 가중치를 부여하여 새로이 계산한 통화지표다.
따라서 구성요소를 단순합계한 통화지표에 비하여 시중유동성 사정을 보다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 가중치는 각 금융자산의 수익률을 활용하여 계산하는데 일반적으로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일수록 수익률이 낮고 자산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높으므로 높은 가중치를 적용하게 된다.
가중통화지표의 증가율도 의미가 있지만 통화지표와 가중통화지표 간의 격차가 시중유동성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더욱 의미가 있다. (통화지표-가중통화지표)가 감소하면 실질적인 시중유동성은 증가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가령, 총통화가 100조원인 경우에 구성 자산별 유동성을 감안한 가중통화지표가 80조원에서 90조원으로 증가하면 총통화량은 동일하더라도 시중유동성은 보다 풍부해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통화지표-가중통화지표)가 증가하면 실질적인 시중유동성은 감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총통화에 대한 가중통화지표를 산출해 본 결과, 총통화와 가중통화지표 간의 격차는 올 들어 계속 감소하였으나 5월 이후 증가세로 반전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3> 참조). 지난해 9월 46조원에 달하던 총통화와 가중통화지표 간의 격차는 올해 5월 33조원까지 줄어들었으나 이후 다시 확대되어 8월에는 40조원으로 늘어났다. 실질적인 시중유동성 상황도 유동성증가 추세에서 유동성감소 추세로 전환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9월에는 다시 격차가 줄어들어 실질적인 시중유동성이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부동화와 어떤 관계가 있나
시중유동성의 변화와 단기부동화의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로 단기부동화가 심화되면 시중유동성은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단기성 수신의 경우 장기성 수신에 비하여 회전율이 높은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장기성 수신이 단기성 수신으로 이동하는 경우 통화총량은 일정하더라도 통화총량에 예금 종별 회전율을 곱하여 계산되는 통화유통량은 증가하게 된다.
또한, 단기성 수신은 장기성 수신에 비하여 높은 유동성을 지니고 있어 가중통화지표의 계산시에 높은 가중치를 적용받는다. 따라서 단기성 수신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우 통화총량은 일정하더라도 가중통화지표는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올들어 4월부터 7월까지 시중자금 단기부동화 비율이 하락하자 초과유동성 및 가중통화지표는 6월부터 8월까지 감소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시중유동성 증가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에 있는 시중자금 단기부동화가 심화되는 경우 부동산 가격 상승이 유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거의 추이를 살펴보면 단기부동자금 비율은 주택가격에 수 개월 정도 선행하여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4> 참조). 단기 부동자금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떠돌고 있는 돈’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식시장 침체와 금리 하락으로 단기성 수신에 머무르는 자금이 늘어날수록 부동산 가격 상승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를 찾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8월 이후 상승세로 돌아선 단기부동자금 비율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성이 있다.
시중유동성의 향후 전망
위의 사실들로 미루어 현재의 시중유동성 상황을 과잉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고 시중유동성 과잉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판단하는 것도 시기 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감소하던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이 8월 이후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감소세를 나타내던 총통화 증가율은 9월 이후 상승세로 반전되었다(<그림 5> 참조).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 비율도 8월 이후 상승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초과유동성 등 각종 시중유동성 지표들도 8, 9월 이후 시중유동성이 다시 확대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대외 불안요인 및 주식시장 폭락을 이유로 한국은행은 파급효과가 광범위한 금리 인상 대신 총액대출 한도를 축소하였으나 유동성 환수 대책으로서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액대출 한도를 줄인다고 곧바로 시중유동성이 환수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금리 중심의 통화정책 구조 하에서 금리 인상 없이 환수된 유동성은 다시 방출될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시중유동성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의 하향 조정,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의 상향 조정 등 가계부실 억제 대책으로 인해 가계대출이 급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라크 전쟁 가능성 등 대외 불안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경기 둔화 가능성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어 당분간 기업대출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낮다. 경기 둔화 위험성과 함께 시중유동성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