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소송현실과 사례를 살펴보면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에는 순기능과 함께 부작용을 고려하는 신중한 접근자세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증권집단소송제 도입에 대비하여 철저하게 투명경영, 책임경영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책임경영, 투명경영을 강조하는 정부의 기업개혁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대표적으로 소수주주권 행사요건의 완화,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통한 주주의 권리 강화, 사외이사제도, 감사위원회 제도 도입 등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것을 들 수 있다. 제도개선과 더불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주주총회 참석, 입법운동 전개, 기업에 대한 소송제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한 소액주주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소액주주운동과 관련하여 최근 기업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이사를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902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처럼 주주대표소송을 포함하여 기업에 대한 소송이 증가하는 가운데 정부는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새로운 소송제도인 증권집단소송제도를 올해 4월에 실시할 예정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주주행동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증권집단소송제가 도입될 경우 기업에 대한 소송이 크게 증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의 증권집단소송제 운영경험과 시사점을 살펴본다.
증권집단소송제 도입 추진
정부는 증권투자와 관련된 집단적인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는 2001년 11월 2일 증권관련집단소송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11월 17일 입법예고를 거쳐 12월 27일 국회에 법안이 제출되었고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어 계류 중에 있다.
정부는 피해주주가 50인 이상인 허위공시, 분식회계, 시세조작, 미공개정보 이용 등의 행위에 대하여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이나 코스닥 등록기업을 대상으로 증권집단소송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더욱이 시세조작, 미공개정보 이용 행위는 모든 상장법인 및 코스닥 등록기업에 적용된다. 증권집단소송제는 2002년 4월부터 실시하고 법률 시행 이후에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만 적용할 예정이다.
증권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업에 대한 소송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정한 지분율 이상(일반기업 1%, 상장기업 0.01%)을 보유한 소수주주만이 제기할 수 있는 주주대표소송과는 달리 증권집단소송에는 피해주주가 50인 이상인 경우 지분율에 대한 제한이 없다. 특히 주주대표소송인 경우에는 손해배상액이 회사에 귀속되는 반면 증권집단소송의 경우에는 손해배상액이 주주 개인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경제적 동기에 의해 주주들은 주주대표소송보다는 증권집단소송을 선호할 유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안에는 남소방지 차원에서 증권집단소송의 적용범위를 5개 항목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보고서에 수시공시사항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어 공시위반의 범위가 수시공시사항으로 확대될 수도 있어 보인다. 또한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회계변경이나 오류수정의 경우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부실회계로 판정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따라서 해석에 따라 증권집단소송의 적용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소송대상자도 주주대표소송은 이사나 감사, 부당하게 이익을 제공받은 주주 등에 한정되어 있으나, 증권집단소송의 경우에는 유가증권 발행과 관련이 있는 감독기관, 공인회계사, 인수증권회사 등을 포함한 외부기관까지 확대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경제적 동기, 적용범위의 확대 가능성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기업이나 임원,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 있어 주주대표소송을 이용했던 주주나 시민단체들은 증권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될 경우 주로 증권집단소송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개정 이후 증권집단소송 급격히 증가 : 미국의 경우
증권집단소송이 가장 활성화된 국가는 미국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5년 이후 증권집단소송이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남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기업을 상습적인 증권집단소송 제기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송제기 요건 강화, 손해배상액 제한, 연방법원의 배타적 관할권 인정 등을 포함하는 제도개혁이 1995년과 1998년에 이루어졌다.
1990년대 들어 증가세를 지속하였던 미국의 증권집단소송 건수는 1995년 제도개혁(증권민사소송개혁법 : Private Securities Litigation Reform Act of 1995)이 이루어진 직후인 1996년 감소세로 돌아서 1995년의 60% 수준인 110건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러한 증권집단소송의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고,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1998년 두번째 제도개혁(증권소송통일기준법 : Securities Litigation Uniform Standards Act of 1998)이 이루어진 이후 증권집단소송 제기건수는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2001년 들어 증권집단소송 건수는 급증하여 2000년 216건의 2배가 넘는 487건을 기록하였다.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개혁에도 불구하고 증권집단소송은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주가하락시 집단소송 증가
2001년중 미국의 증권집단소송 건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주식시장의 하락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에서는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보일 경우 증권집단소송 제기가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주식시장 하락으로 손실이 발생할 경우 투자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경제적 동기는 강해질 것이다.
따라서 주가가 하락할 때에 증권집단소송이 증가하는 것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투자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목적으로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할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증권집단소송은 IT, 컴퓨터 및 전자 업종을 중심으로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에서 2001년에 제기된 증권집단소송의 대상기업 중에서 나스닥기업이 393개사로 81%의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신규공모(IPO)와 관련된 증권집단소송이 전체 소송건수 487건의 약 2/3에 해당하는 311건을 기록하였다. 따라서 나스닥에 신규상장된 기업들이 증권집단소송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벤처기업의 거품 붕괴 이후 높은 가격에 나스닥에 신규상장된 기업들의 주가가 특히 크게 하락하였기 때문이다.
나스닥종합주가지수 전년동월비 변화율에 따른 증권집단소송 제기건수를 살펴본 결과, 나스닥시장의 하락폭이 커질수록 증권집단소송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6~ 2001년 동안에 전년동월비 나스닥지수가 상승세를 보인 달에는 평균 16건 정도의 증권집단소송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나스닥 지수가 전년대비 40% 이상 하락한 달에는 상승세를 보인 달의 2배가 넘는 월평균 38건을 기록하여 전년대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때에 증권집단소송이 급격하게 증가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화해로 끝나
미국의 증권집단소송은 대부분 화해로 끝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제조사연구 및 컨설팅 회사인 NERA (National Economic Research Associates)의 조사에 따르면 1991년부터 1999년 6월까지 제기된 전체 증권집단소송 1,571건 중에서 82%인 1,291건이 화해로 종결되었고 기각된 것이 16%인 253건이었다. 최종판결까지 간 것은 2%에도 미치지 못하는 27건에 불과하였다.
합의가 이루어진 733건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합의금액은 830만 달러이었으며, 이중에서 원고의 변호사 비용을 알 수 있는 670건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평균변호사 비용은 250만달러에 이르고 있었다. 따라서 변호사에 대한 보수로 지급되는 금액이 합의금의 30%에 달하는 것이다. 또한 화해가 이루어진 550건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투자자들의 전체 손실액 1,188억 달러 중에서 화해에 따른 합의금은 39억달러에 불과해 전체 손해액의 3.3%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증권집단소송을 통해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전하는 비율이 매우 낮으며, 이중에서 상당 부분이 변호사 보수로 지출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미국에서 증권집단소송이 최종판결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합의가 이루어지는 현상은 재판을 계속하는 것이 기업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증거개시절차시에 기업의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고, 최종판결에서 패소하여 법률을 위반하였다고 인정될 경우 임원책임배상보험이 지급되지 않아 경영자 개인들이 막대한 손해배상에 대한 연대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계관련 소송의 비중 높아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증권집단소송의 원인을 보다 상세히 살펴보면 부실회계를 원인으로 제기되는 소송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30%에 머물던 부실회계를 원인으로 한 증권집단소송의 비중이 98년에는 55%로 증가하였다. 이는 과거에 증권집단소송의 주요한 표적이 되었던 예측정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완화된 것에 기인한다. 1995년 증권집단소송관련 제도개혁을 통해 기업이 예측정보를 제공할 경우 그 내용이 미래에 대한 예측정보라는 내용과 투자자의 이용에 대한 적절한 주의문구를 표시할 경우 책임이 면제되는 Safe Harbor Rule이 확대 적용되었다. 따라서 예측정보를 대상으로 한 증권집단소송의 제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회계처리와 관련된 소송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91년 한건도 없었던 회계변경(restatement)과 관련된 소송이 1998년 51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어 회계와 관련된 소송원인 중에서 회계변경과 관련된 소송이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회계와 관련된 소송원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익과대인식과 관련된 소송이 66%를 차지하여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는 매출이나 주당이익 인식에 대한 수정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할 경우 경영자들이 매출액과 이익을 높게 인식하여 주가상승을 유발하고, 그에 따른 주가상승을 노렸고, 그와 연계된 보상을 많이 받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투자자들이 인식하고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음으로는 자산의 과대평가, 추정의 오류, 부채의 과소평가 순의 비중을 보였다. 특히 소프트웨어 업종의 경우 컨설팅 계약, 라이센스 계약, 유지보수 서비스 등 복잡한 계약내용에 대한 회계처리에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증권집단소송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대표적인 증권집단소송 사례
미국의 증권집단소송 사례 중 다음 2가지 사례는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부실회계나 공시실수가 금전적으로나 회사의 명성 측면에서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997년 12월 18일 두회사의 합병으로 설립된 미국의 호텔업체인 Cen-dant사는 1998년 4월 15일 합병 이전의 재무제표를 다시 평가할 경우 순이익이 1억달러, 주당순이익은 약 11센트 감소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35달러이었던 주가는 발표 직후 절반 이하인 17달러로 하락하였고, 주주들은 회사가 이전에 발표한 잘못된 영업성과를 바탕으로 투자하여 14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며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하였고, Cendant사는 2000년 8월 미국 증권집단소송 역사상 최대금액인 35억달러를 지급하고 합의하였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코카콜라 사례이다. 2001년말 Financial Time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5위로 선정된 코카콜라도 너무 낙관적인 주당순이익 전망치를 발표하였다는 이유로 2000년 11월 증권집단소송을 제기 당하였고, 최근 소비자운동가인 랄프 네이더에 의해 최악의 10대 기업에 선정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기업들은 주주중시경영을 잘 실천하는 좋은 기업이라는 평판을 받아 오던 기업일지라도 증권집단소송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낙관적인 전망수치나 과거 회계오류의 수정과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이로 인해 주가가 하락할 경우 회사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증권집단소송에 휩싸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만만치 않을 부작용
정부와 시민단체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경영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여, 궁극적으로는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증권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증권집단소송이 지나치게 남발될 경우 사업위험을 부담하는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이 위축되면 기업의 활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 또한 기업이 예측정보 발표 등을 꺼려 정보유통이 방해되면 오히려 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자본시장의 발전이라는 증권집단소송제 도입 본래의 취지가 저해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특히 경기침체 등 개별기업 입장에서는 불가항력적인 이유 때문에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보일 경우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앞의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역시 주식시장이 하락할 경우 증권집단소송이 주식투자자들의 손실보전을 위한 보험상품의 성격으로 전락하는 측면이 있다. 이처럼 사소한 과실에 기업 외적인 동기가 더해지면 엄청난 규모의 배상액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 경우 기업들은 경기위축, 주가하락에 대한 부담에 더해 증권집단소송에 대응하여야 하는 부담을 더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와 같은 증권집단소송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증가가 개별 주주의 이익증대로 이어지는 사례는 적다. 소송제기 이후 추가적인 주가하락과 소송비용, 변호사 수임료 등을 제하면 소액투자자들은 증권집단소송 제기를 통해 이익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결국 증권집단소송제가 일부 브로커와 증권집단소송 전문법률회사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도입에 신중 기해야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시장에 의한 경영감시기능의 강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불투명한 기업에 대해서는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시장의 제재가 한층 강화되었으며, 정부의 규율도 엄해졌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투명경영을 통한 주주중시경영을 기업의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이고 이를 위한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최근 도산한 미국 엔론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주주중시경영철학이나 기업의 의무가 기업의 자발적 노력 없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주주권리 강화는 기존제도의 효율적 보완을 통한 기능강화를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에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새로운 제도실시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바탕으로 부작용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증권집단소송제 도입에도 당위성과 함께 현실적 문제점을 동시에 고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 역시 이번 증권집단소송제 도입 논의를 계기로 더욱 철저한 투명경영, 책임경영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투자자를 기만하는 기업은 법정에 가기 전에 미리 시장의 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