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투자는 생산성과 상관이 없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의 경우 IT 투자가 생산성 향상과 기업가치 증대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똑같이 투자를 늘리더라도 IT화에 맞게 기업조직을 변모시킨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간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조직은 변화하지 않은채 IT 지출만 늘린 기업은 오히려 생산성이 하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컴퓨터를 비롯한 IT가 경제활동에 사용되면서 기업 및 경제전체의 생산성이 향상되었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었다. 그러나, 생산성을 실제로 측정해 보면 IT가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뿐만 아니라 이미 1970~1980년대부터 기업들이 컴퓨터에 대한 지출을 크게 늘려왔으며 그 결과, 사무직 근로자들의 계산능력(computing power)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측정된 생산성은 변함이 없거나 심지어 감소하는 현상까지 발생하였다. 이와 같이 IT에 대한 지출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정체하는 현상을 생산성의 역설(Productivity paradox)이라고 한다.
이 생산성의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최근에는 IT투자와 함께 이에 따른 적절한 기업조직의 변화가 있어야만 IT의 생산성 증대효과가 충분히 발휘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사례와 연구를 중심으로 IT가 기업조직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생산성의 역설
생산성의 역설은 측정상의 오류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이 크다. 생산성의 개념은 사실 간단하다. 생산에 투입된 생산요소 한 단위 당 생산물의 양이 생산성이다.
그렇지만 정의하기는 쉬우나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경제시대에 정확히 측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 또한 생산성이다. 생산성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생산물과 생산요소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에서 생산물의 양을 단순히 개수로 측정할 수 만은 없다. 생산물의 질과, 편리성, 다양성 등 무형의 특성도 생산물 측정에 포함되어야 한다. 생산요소의 측정 또한 쉽지 않다. 노동시간과 자본투입량 뿐만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질도 생산에 중요하다. 노동자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므로 노동자의 훈련과 교육도 중요한 생산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IT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새로운 기업조직도 생산요소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수나 노동시간과는 달리 이런 측면의 생산요소들은 기업활동에 필수불가결하나 생산성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은행의 ATM기계를 생각해 보면 현재의 생산성 측정이 매우 불합리함을 알 수 있다. ATM은 종전에 직원이 하던 은행의 각종 예금 및 출금업무를 처리해 준다. 그 결과 고객과 직원이 작성하던 예금 및 출금전표를 작성할 필요가 없어진다. 만일 은행의 생산물을 전표의 숫자로 측정한다면 ATM 도입이후 이 은행의 생산물은 감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ATM 도입으로 고객의 편리성은 크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편리성은 생산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편, ATM 도입에 필요한 각종 컴퓨터 및 ATM 구입비는 비용으로 계상된다. 현재의 회계관행은 ATM이나 컴퓨터 도입을 비용지출로 간주하고 투자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IT지출은 비용으로 잡히고 IT로 인한 무형의 가치증가는 생산물에 포함되지 않고 있어, IT지출은 비용만 증가시키고 생산물의 증가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기 쉽다. 그 결과 생산성은 증가하지 않고 IT투자는 수익성이 낮은 투자로 인식되기 쉬운 것이다.
기업조직변화
만일 IT지출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한다면 IT투자는 기업 내에 IT자본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IT투자에 의해 기업 내에 축적되는 자본은 단순히 컴퓨터, 통신기기 등과 같은 물적 IT자본에 국한되는 것일까? 미국 기업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IT투자가 물적자본의 축적만 가져온다면 IT투자가 많은 기업일수록 생산성이 향상하고 생산물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꼭 그렇지 많은 아닌 것이다. IT지출이 생산성 향상과 제대로 연결된 케이스도 있으나 오히려 생산성을 하락시킨 경우도 매우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오는 것인가?
현실에서 IT의 효과가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IT가 이른바 다용도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ies)이라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산업경제시대의 대표적인 다용도기술로는 증기엔진, 전기, 전신, 전기모터 등을 들 수 있는데, 다용도 기술이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 기술을 보완하는 추가적인 혁신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리고 이 보완적인 혁신의 대부분은 조직의 혁신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전신기술은 기업 내지는 사업의 지리적 위치를 전국, 더 나아가 전세계에 걸쳐 퍼지게 했으며, 이렇게 기업조직이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을 때 생산성증가에 최대한 기여하게 되었다. 또한, 전기모터는 공장 내에서 기계의 위치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게 함으로써 생산공정을 신축적으로 디자인하게 하여 생산성 증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다용도 기술은 조직의 혁신이 수반될 때 가장 생산성을 증대시키며 IT 역시 그에 걸맞는 기업조직의 변화가 수반되었을 때야 비로서 기업 및 경제전체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IT투자와 조직자본
IT는 무엇보다 기업 내에 새로운 사업절차(business process)나 업무방식(work practices)의 형태로 조직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변화가 짧은 시일 내에 이루지는 것도 아니며 많은 기업이 새로운 IT에 적합한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사업절차나 업무방식의 변화가 축적되어 궁극적으로 기업이 새로 채택한 IT에 가장 적합한 조직으로 변화하는데 성공하면 IT로부터 얻는 생산성 향상의 정도는 막대하다. 이와 같이 IT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최적의 기업조직은 그 자체가 기업 내에서 하나의 생산요소로서 작용한다. 이른바, 조직자본(organizational capital)이 되어 기업의 생산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IT자체만 도입해서는 기업의 생산성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지만, IT가 적절한 조직의 변화와 결합할 때 비로서 IT의 생산성 증대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적절하게 변화된 기업조직은 생산활동에 필수 불가결한 독립적인 생산요소로서의 조직자본이 되는 것이다. 이때의 생산성 증가분에는 IT로부터 얻는 이익 뿐만 아니라 기술과 변화된 조직으로부터 얻는 더욱 큰 이익도 포함 되어 있는 것이다.
IT투자의 가치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러한 조직의 변화, 즉, 조직자본이 기업의 생산성이나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나 될 것인가?
최근 연구결과를1)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IT지출이 예를 들어, 1달러 증가했을 때, 기업의 생산성도 1년 정도의 기간 내에서는 대략 비슷한 크기인 1달러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산성은 2배에서 크게 8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IT의 효과가 크지 않으나 장기로 갈수록 기업 내부의 조직 변화가 일어나면서 IT가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IT가 기업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은 기업가치(firm value)에 미치는 효과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기업이 기계설비와 같은 일반적인 물적자본이나 기타자산을 1달러 증가시켰을 때는 주식시장에서 평가된 기업의 가치도 대략 1달러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IT투자를 1달러 증가시킨 경우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기업가치가 적게는 5달러에서 많게는 20달러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것으로 조사되었다.2)
즉 기업들이 1달러의 IT지출을 하는 경우 전통적인 재무제표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4달러에서 19달러에 이르는 추가적인 무형자산이 기업 내에 축적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에서 서술한 바와같이 이러한 기업가치증가가 순전히 IT투자에 의해서만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IT투자와 이에 따른 소프트웨어의 개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새로운 사업모델의 도입, 고숙련 IT노동자의 고용 등 기업조직의 변화가 발생함으로써 이런 가치증대효과가 가능한 것이다. 즉, IT투자증대가 무조건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고도성장의 원동력으로 작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조직의 변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조직자본의 양이 적은 상태에서 IT투자를 늘리는 경우에는 오히려 기업의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에서 org로 표현되는 변수는 기업조직의 변화정도를 나타내는 데, 이 변수가 낮은 수준에서는 IT투자를 늘려도 기업가치는 오히려 하락하며, 조직자본변수가 높은 상황에서는 IT투자의 증가가 높은 기업가치를 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직자본의 특성
그렇다면 이렇게 IT자본과 기업의 조직변화가 어우러질 때 생산성 및 기업가치 증가효과가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IT투자를 하면서도 기존의 조직을 쉽게 못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기본적으로 IT에 적합한 조직변화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경영구조, 인센티브 시스템, 승진체계와 같은 기본적인 기업의 경영방식과 핵심사업의 재편성 등은 말처럼 쉽게 이루어 지는 작업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에 있어 수십년 간 유지되어오던 경영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수십년 간 성공적이던 경영방식을 버리고 성공할 지 실패할 지 모르는 새로운 조직체계를 채택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입장에서 쉽게 조직변화를 추구하려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미래에 있어서 IT는 더욱 더 기업경영과 밀접하게 관련될 것이며 적절한 조직변화를 통해 IT의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하는 기업은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시장에서 도태되어 버릴 것이 자명하다.
반면, 조직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기업에게 있어서 변화된 조직은 하나의 독립된 조직자본으로서 경쟁기업이 모방하기 힘든 기업고유의 생산요소를 보유하게 됨을 의미하며 그 결과 얻게 되는 이익의 증가폭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할 것이다. 이처럼 조직자본은 축적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나 일단 축적되고 나면 개별기업 고유의 특성을 지니게 되어 이른바 ‘독점이윤’을 향유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결국 IT지출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생산성이나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 측정상의 문제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IT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기업레벨의 조직변화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에의 시사점
지금까지 미국 기업의 사례와 연구를 살펴보았는데 우리 기업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명백하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경제의 붐을 타고 각 기업마다 IT투자가 크게 늘어난 기간이 있었다. 비단 디지털 붐의 기간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기업들의 컴퓨터를 위시한 IT에 대한 지출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최근 IT경기의 위축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지출도 크게 줄어 들고 IT관련 지출도 상당폭 감소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미래에 IT가 더욱 기업의 경제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IT에 대한 비관론자들은 막대한 IT지출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가가 관찰되지 않고 있음을 들어 IT의 효과를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IT의 다용도 기술로서의 특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IT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더불어 기업조직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이다. IT를 이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웹사이트 하나를 운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IT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IT투자와 기업조직의 변화가 요구된다.
특히 미래의 디지털 경제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업 CEO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새로운 IT가 채택되었을 때 CEO는 이에 필요한 조직의 변화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이 때의 조직변화는 IT의 성공여부를 좌우하는 또 다른 혁신의 과정이므로 심사숙고하여 가장 적합한 조직의 변화방향을 설정해야 하며 일단 설정되면 과감하게 조직변화를 추진해나가야 하는 임무가 CEO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결국 미래의 디지털 경제에서 우리 기업, 우리 경제의 성공여부는 IT에 걸맞는 기업조직변화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