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빈 | 2008-02-25 |
2007년 말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국무조정실에 등록된 우리나라 각급 중앙행정기관의 규제 총수는 5,116개로 집계된다. 이 수치는 과거에 비해 그래도 많이 줄어든 수치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지난 1998년 문민정부 말에 즈음해 행정규제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꾸준한 규제개혁 정책을 펼쳐왔다. 그 결과 한때 8천여 개를 넘나들던 규제의 수가 5천여 개 수준까지 줄었다. OECD(2005) 규제 보고서도 우리나라 규제품질의 수준을 전체 30개 회원국 중 21위(1998)에서 18위(2003)로 상승시켜 줌으로써 그간의 노력에 대해 인정해 주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규제개혁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왜냐하면 단순한 규제 수의 감소가 개혁 성공의 가늠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규제의 수를 줄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규제의 품질수준을 강화하고, 규제개혁의 정책적 노력들이 시장에서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성과로 연결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규제개혁을 통해 경제주체인 기업과 가계가 시장에서 가시적으로 성과를 거둘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개혁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향후 규제개혁의 방향은 시장의 성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성장 친화적인 내용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성장 친화적 규제개혁을 기업과 가계의 사회적 후생 순증가에 부응하는 개혁으로 정의한다면, 향후 규제개혁에 있어 고려해야 할 정책적 이슈 및 필요 요건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규명해 볼 일이다. 또한, 규제개혁을 통해 실제 성과로 연결된 선진국 사례를 통해 우리 정부와 시장이 배울 점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규제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율정화 능력을 인정해 주는 가운데 사회적 편익이 극대화 될 수 있는 고객지향형 정책개발과 신속한 시행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 목 차 >
Ⅰ. 문제의 제기
Ⅱ. 우리나라 규제개혁의 현주소와 이슈
Ⅲ. 선진국 규제개혁의 시사점
Ⅳ. 규제개혁의 새 출발을 위한 제언
I. 문제의 제기
“정부가 공익을 위한다는 선한 의도에서 정책을 펼칠 때야말로 경계심을 가지고 시민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아무리 좋은 뜻과 열성을 가진 이들로 구성된 정부라 할지라도 그들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자유는 침해 받게 된다.” 20세기 초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명성이 높았던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e. D. Brandeis)가 정부권력에 의한 자유 침해를 두고 던진 경고문이다.
당초 규제는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정부의 선한 뜻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실제 세상은 규제로 인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거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음을 종종 보게 된다. 규제의 선한 의도로만 본다면 이를 통해 세상은 보다 더 살기 좋아져야 하나 현실은 꼭 의도한 바 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규제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는다고 하여 그 수를 늘리고 강도를 높여서 목적한 바를 실현하고자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마치 병이 낫지 않을 때 더 강한 항생제를 처방하여 환자의 내성만 키우는 것처럼 규제의 사회경제적 부작용만 증폭시키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것이 규제가 가진 역설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는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경제활동의 원활한 진행을 지원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쟁체제 확산, 환경문제의 대두, IT 정보기술의 발달 등 새로운 경제사회적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여건 하에서는 규제와 관련된 여러 분제들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접근과 대안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규제의 대상인 시장주체들 중에서도 특별히 기업의 관점에서 규제개혁의 이슈를 되짚어 보되 ‘기업 경영환경 개선과 투자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에의 기여’라는 측면에서 규제개혁의 바람직한 접근방식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II. 우리나라 규제개혁의 현주소와 이슈
1. 우리나라 규제 현황
세계은행(World Bank)이 2005년 발표한 규제품질의 국가별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총 204개국 중 58위를 차지했다. 이는 2002년의 49위에 비해 9계단 후퇴한 것이다. 또한, 기업환경의 국가별 순위(Doing Business)도 전체 178개국 중 23위(2006)에서 30위(2007)로 하락했다. 이는 에스토니아(17위), 라트비아(22위), 푸에르토리코(28위)와 같은 국가들보다도 뒤쳐진 수치다. 특히, 기업의 창업(Starting Business), 투자자 보호(Investor Protection), 국제무역(Trading across Borders)등 기업활동 여건과 관련한 10가지 평가 분야 전체에 걸쳐 어느 한 분야에서조차도 긍정적인 규제개혁 조치를 취한 국가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편, 2005년 실시된 한국 갤럽의 ‘규제개혁 체감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8%만이 규제개혁 성과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응답해 그간 정부의 규제개혁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실질적인 효과는 시장(기업과 가계)입장에서 볼 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그 동안 우리나라 규제개혁이 규제의 수를 줄이는 규제완화(Deregulation) 차원의 양적 발전은 있었으나 그 보다 한 차원 높은 규제의 품질관리, 더 나아가 기업과 가계의 성과 향상까지를 아우르는 규제관리(Regulation Management)의 수준으로까지는 나가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 기업 투자 활성화 차원의 규제개혁 이슈
글로벌 경쟁체제 확산에 따라 세계경제가 급속히 통합화 되는 추세에 있고, 자국의 경제성장과 이를 떠받치는 기업 성과의 향상을 위해서는 민간만이 아닌 공공부문까지도 발벗고 나서야 된다는 정부역할에 대한 요구가 확산됨에 따라 규제정책에 대한 관심도 단순히 규제의 수를 줄이는 전통적인 양적 절감방식으로부터 영역별 규제의 품질수준을 제고해야 한다는 질적 고도화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일시적으로 악화된 경제상황 타계와 기업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한시적, 부분적 규제완화(Deregulation)단계를 넘어 변화된 세계경제의 경쟁방식과 대외경제 여건을 반영한 규제개혁의 상시화,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음이다.
또 반(反)시장적인 규제조항들의 폐지나 개선 차원을 넘어 어떻게 하면 규제정책의 입안과 집행이 기업 경영활동의 동태적 성과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규제정책에 대한 관점변화는 규제수준의 품질제고를 통해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입장에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함으로써 규제로 인한 기업입장의 편익을 비용보다 크게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규제정책이 진행되어야 함을 뜻한다.
최근 국무총리 요청에 따른 한국경제연구원 용역과제 결과인 규제개혁 종합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규제개혁 과제들 가운데 창업, 고용, 교역절차 등 기업경영에 직접 관련된 과제들만 잘 추진되어도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기업환경 순위가 2007년 말 기준 30위에서 15위 정도까지로 급상승 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 놓았다. 이는 규제가 시장성과를 지원하는 쪽으로 시행될 경우, 곧바로 기업활동의 성과로 연결될 수 있는 정책적 여건이 형성될 수 있음을 반증한다. 더불어 그 동안의 행정편의적 규제가 기업의 편의성을 증가시켜 주는 규제개혁으로 이어질 경우 행정민원 처리 비용 감소, 기업활동 정보 정확성 확보, 정보 오남용 방지에 따른 불가측성 비용 발생 방지 등 편익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규제개혁 정책을 펼칠 때 어떠한 정책상 고려를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하는가?
① 정책 고려 이슈1 : 누구를 위한 규제개혁인가?
최근까지도 우리나라 규제정책은 정책당국의 입장이 우세한 면을 보여왔다. 그 결과 규제주체인 정부와 객체인 시장간 쌍방향 상호작용없는 일방적인 집행만이 주가 되는 모습을 띠었다. 이는 피규제자측의 규제순응성(Regulation Compliance)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규제를 둘러싼 정부와 시장간 숨바꼭질이 계속돼 양측 모두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과연 규제의 고객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정부와 시장간에 합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② 정책 고려 이슈2 : 공정경쟁과 완전경쟁간 구별이 되는 규제개혁인가?
규제개혁에 있어 기본 원칙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이어야 한다. 지난 2004년 정부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통해 그 동안 고유업종제, 단체수의계약제 등을 통해 일부 중소기업들이 누리던 특혜를 철폐했다. 이러한 조치는 보호가 아닌 경쟁을 통해 혁신형 중소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일자리 창출 역량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한 중소기업을 키우고자 하는 취지에서 실행됐다. 어떤 면에서는 그 동안 소수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만 특혜적 조치가 있음으로 인해 이들이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불공정 행위를 하는 등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모습을 보여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투명한 공정경쟁구도 형성 없이 단순한 완전경쟁만이 원칙으로 채택될 경우, 애초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측에 의해 독과점과 도덕적 해이 등 불공정 행위가 재발하는 폐해가 생길 수 있다. 이는 기회 균등과 절차적 투명성이라는 공정경쟁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써 규제개혁시 고려해야 할 포인트이다.
③ 정책 고려 이슈3 :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규제개혁인가?
세계화, 개방화라는 경영환경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아직까지 우리나라 규제의 많은 부분이 과거 산업 보호적 조치를 목적으로 한 내용이 많다. 앞으로 이러한 규제는 세계경제의 통합화 추세 속에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최근 외국인 투자 유입의 양과 속도 둔화, 경제자유구역 유치 정책의 부진도 규제로 인한 제약이 주된 이유다. 이미 우리나라는 WTO 다자조약 회원국임과 동시에 FTA 등 수십 개의 지역단위조약(RTA)을 추진 또는 발효시킨 나라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규제제도와 시스템 차원의 개혁 없이는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환경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규제개혁과 관련한 위 정책이슈들을 전제로 어떤 구체적인 개혁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다. 이 문제를 개방과 자율의 시장원리에 입각한 규제개혁 정책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한 선진국들의 과거 규제개혁 정책 사례를 통해 살펴 봄으로써 우리나라 규제제도 고도화를 위한 시사점을 찾아 볼 수 있다.
III. 선진국 규제개혁의 시사점
OECD가 선진국들의 과거 규제개혁 내용을 분석, 종합하여 내놓은 ‘좋은 규제의 원칙’(Principles of Good Regulation, 1997)에 따르면 ‘좋은 규제’란 ▲ 명확히 정의된 정책목표 ▲탄탄한 법적 기반 ▲ 비용을 정당화하는 편익 ▲ 시장왜곡 최소화 ▲ 수요자 입장 중시 ▲ 대내외 경쟁, 교역, 투자촉진 원칙과 병립 등을 충족시키는 규제도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 규제개혁에 성공한 선진국들의 경우, 비록 당시 각 국이 처한 사회경제적 특수성과 역사적 배경상의 차이점 등으로 인해 일괄 비교는 어려울지라도 경제성장과 민간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지향한다는 규제개혁 정책의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현을 위해 실질적인 규제개혁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기업투자 활성화, 고용창출, 가계 소득증대 및 대내외 경쟁력 제고 등의 성과를 달성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① 네덜란드
네덜란드 정부의 기업 행정부담 비용 절감을 위한 규제완화 조치는 정부와 기업의 상생을 도모한 좋은 예이다.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규제개혁은 조세와 관련된 기업정보 등 기업이 정부에 대해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정보제공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행정부담 비용을 절감하는 데에서 시작됐다. 이를 위해 2003년 규제 비용을 계량화 한 표준비용모델(Standard Cost Model)을 활용, 정부규제로 인한 기업의 행정부담 비용을 측정했다. 그 결과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연간 행정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20조원에 육박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존 재무부 등 유관 4개 부처를 중심으로 하는 행정부담 비용이 75%에 달하고, 그 중 50% 이상의 비용부담이 10여 개 법률로부터 나온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에 대해 GDP의 3.5%에 달하는 기업의 행정부담 비용을 2007년까지 25% 줄이는 국정과제 목표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03년에서 2006년까지 약 5조원에 이르는 기업의 행정부담 비용을 경감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시행조치로 관련 중앙행정 조직을 통합한 정부부처간 프로젝트 팀(Inter-ministerial Project Team, IPAL)을 구성하고 규제완화 보고 및 위험관리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규제개혁이 성과로 연결되는 실행력을 담보했다. 또한, 기업의 창업신고 온라인화, 근로소득세와 각종 사회보험료 등 징수절차 일원화, One-Stop 기업정보 보고체계 등도 구축하였다. 감소된 재정수입의 경우, 내각과 의회의 예산편성 및 집행 사이클과 연계하여 조정함으로써 각 부처별 감소분을 배분하여 부담케 하고, 이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얻게 함으로써 개혁조치의 실행에 따른 개별 부처의 부담을 경감해 줄 수 있게 되었고, 소관부처의 협력도 얻어낼 수 있었다.
②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 대한 세계은행의 평가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무엇이 인구 4백만이 조금 넘은 도시국가를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여건의 나라로 만들었을까? 그 해답은 도시국가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환경과 국제사회에서의 약한 발언권 등 제약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사회기강 확립, 금융 및 무역 중심의 경제개발 장기비전 제시를 통한 지속적인 규제개혁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총리실 직할의 부패행위조사국(CPIB, Corruption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을 설치하고 반부패법과 부정축재몰수법 등을 시행함으로써 경제사회적 투명성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켰다. 이러한 노력은 국내외 기업들로 하여금 경영활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였고, 비용 절감 노력과 생산성 증가를 꾀하고자 하는 유인체계를 설계토록 했다. 그 결과 외국인의 직접투자 증가율이 연평균 20%대를 상회하는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선진 기술유치를 위한 사후 승인제도 도입, 정부차원의 연구개발비 지원 등을 통해 자본과 기술을 동시에 유인하는 가시적인 효과도 보았다. 대외적으로는 아시아 금융의 허브를 지향하면서 다국적 기업의 경영활동 편의를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는 등 적극적인 규제개혁 조치를 펼쳐 왔다. 한국은행 발간 싱가포르의 경제발전 30년사를 보면 이러한 금융규제 개혁정책을 통해 역외금융시장인 아시안달러시장(Asian-Dollar Market)의 총자산 규모가 1970년 4억 달러에서 25년 만에 약 5천억 달러에 육박하는 괄목할 만한 효과를 거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싱가포르가 오늘날 기업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춘 나라가 되는 데 있어 핵심 성공요소는 투명성, 공정성, 글로벌 스탠다드의 원칙이 적용된 지속적인 규제개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③ 아일랜드
한때 아일랜드는 여타 OECD 국가들에 비해 저성장 상태에 있었고 개혁의 부진으로 인해 실업률이 17%대에 육박하는 최악의 상태에 처해 있기도 했다. 이 당시 아일랜드 경제는 농업과 초보적인 제조업 중심의 낙후된 단계에 처해 있었으며 가격규제 만연으로 인해 기업활동의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등 난맥상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시작된 규제개혁 시도는 90년대 들어 본격화 되면서 아일랜드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 결과 1991년에서 2003년 기간 동안에는 연평균 7%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비슷한 기간 동안 OECD 회원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연평균 성장률 5%대를 초과하는 수준의 경이로운 실적이다. 1990년대만 놓고 본다면 오늘날 중국이 구가하고 있는 연평균 성장률 10%대를 기록할 정도였다. 이는 1990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 1998년 2만 달러, 그리고 2003년에는 급기야 3만 달러 대에 들어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성과로 이어졌다. 같은 시기 유럽의 독일, 프랑스의 성장력 감퇴현상에 비해 대조적인 모습이다.
아일랜드의 부흥을 가능케 한 주요 요인은 전면적인 시장 개방 및 기업활동 진입장벽 철폐, 공공부문 개혁과 경쟁정책 확립, 친시장적 노동시장 구조조정과 세제 개혁 등 철저한 시장 친화적 규제개혁을 통한 기업 경영환경 개선과 해외투자 활성화였다. 또한, EU 통합이라는 경제통합의 추세를 최대한 활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외자기업이 전체 제조업 총 고용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수출입 물량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해외투자에 대한 개방성이 높다.
④ 영국
영국의 규제개혁은 개혁 당시의 상황에서는 많은 갈등으로 인한 사회계층별 희생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대처 정부 시절 노조 등 이해관계 세력들로부터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민영화와 노사관계 개혁, 금융시장 빅뱅 등을 통해 자유화와 규제개혁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결국 만성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극복하고 80년 대 중반 이후 4~5%대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는 등 경제 성장동력의 회복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런 영국도 1976년 우리와 같은 IMF 관리체제 시절을 겪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1979년 대처 집권 후 대대적인 규제개혁 정책을 통한 고강도 구조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성장둔화, 물가상승, 실업증가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은 대국민 행정규제와 관련한 권한을 민관합동 기구에 대폭 위임하는 Next Steps 프로그램과 더불어 민간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공공서비스 경쟁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CCT(Compulsory Competitive Tendering)등 전면적 규제완화 정책을 펼친 결과 총 48개의 공기업과 공익사업을 민영화 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더 나아가 은행과 증권사간 장벽 철폐, 외국 금융사 시장진입 허용, 주식거래 수수료 자율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금융빅뱅을 통해 해외투자 유치에 성공하여 오늘날과 같은 세계 금융의 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⑤ 스웨덴
북유럽 복지국가의 대표격이었던 스웨덴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순위에서 꾸준히 뒤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던 스웨덴 경제가 90년대 말 들어 EU 회원국 평균치보다 높은 연평균 GDP 성장률을 기록하고 1인당 GDP에 있어서도 OECD 평균을 1.2배(2004) 가량 상회하게 된 계기도 역시 규제개혁에 있었다. 스웨덴 경제는 고령화 된 인구구조, 더딘 고용창출 속도 등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맥킨지 보고서(2006)에 따르면 점차 상품시장 규제 해소와 경쟁유도로 민간분야 생산성이 회복되는 추세여서 향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2005년 스웨덴의 민간분야 생산성 상승률은 연 3.3%대로 OECD 국가들 중 4위이고, 평균치 보다는 1.5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분야별로도 자동차제조업, 소매업, 은행업, 식품가공업 등 네 개 분야에서 1995년 당시 각 분야 1위였던 국가에 비해 각각 10%(자동차제조업), 16%(소매업), 20%(은행업), 42%(식품가공업)씩 낮았으나 규제완화를 통해 민간시장의 생산성을 급속히 상승시켜 2006년에는 자동차제조업 8%, 소매업 5%, 은행업 4.6%, 식품가공업 3.1% 등으로 오히려 높아진 결과를 기록 중이다. 그 중 기업 친화적 규제개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의 사례로 자동차 산업 분야를 들 수 있다. 스웨덴의 아성이 구축돼 있던 고급차 부문에 일본 자동차메이커들이 진출하면서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정부는 법인세 인하, 부품 협력업체관련 행정규제 요건과 절차 완화 등 규제개혁 조치를 수행했다. 동시에 기업은 노사양측의 상호이해를 통해 임금조정 및 복지비용 축소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선진국들의 규제개혁 정책 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이들 정부의 규제에 대한 기본입장은 시장과 경제활동 주체인 기업에 대한 고객마인드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2005년 세계은행 Doing Business보고서는 선진국 수준으로 규제개혁을 할 경우 규제가 심한 후진국들의 경제 성장률은 1.0%에서 3.2%로 그리고 규제의 정도가 중간 수준의 국가는 1.4%에서 2.8%로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IV. 규제개혁의 새 출발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 살펴 본 선진국들의 규제개혁 성공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도 공공부문 개혁, 노사간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 조정, WTO/FTA 등에서 나오는 글로벌 규제 순응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이슈가 산적해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기업과 가계의 성과를 최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1. 수요자 지향형 규제로의 전환이 선결요건
규제개혁의 정당성은 기업과 가계입장에서 본 사회적 순편익이 0보다 클 때 확보된다. 과거 우리나라 규제의 문제점은 규제로 인한 이익의 수혜대상이 기업과 가계가 아닌 정책당국이 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공공부문의 규제개혁 접근 시각을 고객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규제기관은 기업과 가계를 고객으로 인식하고, 규제에 따른 편의성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서비스 마인드 제고가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선 규제집행 기관에 규제영향평가(Regulation Impact Analysis)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과 One-Stop 규제행정 서비스 체계의 구축 등이 요구된다. 또한, 집행주체인 공무원 집단에 대한 고객마인드 제고 교육훈련도 지속적으로 실시되어 행정서비스 의식의 변화를 유발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과정마다의 성과관리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규제개혁의 핵심성과지표(KFS)로 ▲ 공정경쟁 규제지수 개발 ▲ 사회적 편익-비용 분석 ▲ 규제 순응률(Regulation Compliance Ratio) 측정 ▲ 공무원 서비스 마인드 수준 조사 ▲ 글로벌 표준화 수준 등을 수립, 측정, 평가관리 할 필요가 있다.
2. 기업 규제정보의 공개 및 투명화
그 동안의 규제관련 정책은 규제당국과 피규제자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일방적인 형태로 진행돼 온 측면이 많다. 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개혁 차원의 개선 제언을 통해 기업활동의 성과를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왔다. 앞으로는 규제당국인 정부의 규제정책 정보와 규제의 대상인 기업의 기업활동 정보 간에 투명한 교환 프로세스 정립을 통해 이를 상호 공유함으로써 상호 불신에서 오는 행정비용 부담을 미리 최소화 시키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규제정책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업은 기업활동에 저해가 되는 정부규제에 대해 다양한 채널을 통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불필요한 규제 남발 요인을 제거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필요하면 정책당국에 대해 규제개선에 대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요구를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와 시장이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채널 등 제반여건이 형성돼야 하는 바 규제정보 공개와 투명화를 위한 협의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입법부 차원의 행정규제정보 공개 및 투명화와 관련된 입법적 노력이 요구된다. 향후 국회는 민간부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규제입법 지원기능을 전문화시키고, 사법당국도 규제집행 절차 및 과정에 대한 심사기능 강화를 통해 규제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3. 글로벌 규제조화 흐름에의 순응
이미 규제개혁의 논의 수준은 영토를 벗어나 국제적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식기반 성장시대의 규제개혁의 추진 방향은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을 아우르는 쪽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미 WTO와 같은 다자간 무역협정에서는 무역원활화 문제와 연계된 무역관련 규제 법령과 행정적 해결절차까지도 포괄하는 ‘규제 투명성(Regulation Transparency)’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GATT 제 10조). WTO는 국가간 상호 규제조화를 위해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와 내국민 대우(Nation Treatment)원칙을 근간으로 어떠한 제약도 없는 규제의 내외국 동일적용을 지향하고 있다. 이렇듯 글로벌 수준에서의 규제논의가 진행됨을 볼 때, 우리나라도 통상, 환경, 노동, 자본 및 금융 등 각 분야에서 글로벌 규제순응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해당 분야 전문가 양성이 시급한 상황인 바 OECD, World Bank와 같은 국제규제 관련 전문기관의 노하우 습득을 위해 적극적인 인력교류가 필요하다. 또한, 법제 정비, 정책당국의 기업에 대한 국가별 규제관련 정보 제공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4. 다양한 실험적 제도운영을 통한 규제 탄력성 제고
정부규제가 급변하는 시장변화에 융통성 있게 적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양한 규제조치들의 운영 탄력성을 제고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규제기본법상의 제도인 규제일몰제와 더불어 규제영향분석(RIA : Regulation Impact Analysis), 규제총량제 등 다양한 실험적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환경변화에 대한 규제 적응력을 배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규제개혁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규제자유지역의 개념을 도입, 정부규제 실효성을 테스트 하고 검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시장에 도움이 되는 규제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발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시장에 도움이 되는 정부규제의 후보들을 미리 테스트 해 볼 수 있고, 효과가 입증된 규제를 신속히 적용함으로써 최초 의도한 규제개혁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시장 친화적 규제개혁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구분, 정부개입의 방식과 타이밍 등 규제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 나아가 이를 기업, 가계, 기타 이해관계집단 등에게 확산, 이해시킨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시장에 의해서 어렵사리 발굴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원들이 규제로 인해 사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고객지향형 얼굴을 가진 규제정책이 실현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열 개의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 한 개의 규제를 개선 또는 폐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시장 친화적 규제개혁의 성공은 시장의 자율정화 능력을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정부의 변화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참고 문헌>
Eugene Bardach and Robert A. Kagan(2002), Going by the Book: The Problem of Regulatory Unreasonableness, New Brunswick: Transactions Publishers
OECD. 2000b. Reducing the Risk of Policy Failure: Challenges for Regulatory Compliance, PUMA(2000) 4
World Bank/IFC, Doing Business Report, 2004~2008
McKinsey Report, 2005
Diana Farrell, The Productivity Imperative, McKinsey Quarterly, 2005
한국경제연구원/전국경제인연합회(2007), 규제개혁 종합연구 보고서
산업연구원(2002), 지식기반 성장시대의 규제개혁 추진 방안 I, II, 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