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득 | 2008-02-27 |
국내기업의 성장성 둔화세가 지속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국내 제조업의 주요 성장성 지표들은 한자리 수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기업의 성장성 둔화가 지나치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낮아진 실물경제 성장률이나 기업들의 현금흐름 창출능력, 지속가능성장률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실제성장률 등을 고려할 경우 국내기업들의 성장성 위축이 과도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투자 둔화와 성장 위축은 외환위기 이전의 과속성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된다. 성장성과 수익성, 그리고 기업가치 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성장전략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해 보았다. 기업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성장성과 수익성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기업들이 보유한 역량에 따라 성장성과 수익성간에 경중을 달리하는 경영활동이 요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수익성이 높은 기업은 적극적으로 성장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고,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을 개선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기업가치의 관점에서 더 바람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은 필요하지만 기업의 투자 확대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고 역량에 비해 과도하게 투자가 확대되는 것은 투자 부진에 못지 않게 경계하여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외형성장은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개별기업이나 국가경제 전체 차원에서 투자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따라서 투자환경 개선을 통해 기업의 전체적인 투자는 촉진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공시제도 및 신용평가기능 강화 등 금융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통해 수익성 낮은 사업에 대한 투자를 억제할 수 있는 장치는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사업기회를 발굴함으로써 경영성과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나가는 것이 장기적 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중요하다.
< 목 차 >
Ⅰ. 국내 기업의 성장성 하락 추이
Ⅱ. 국내 기업의 성장성 진단과 평가
Ⅲ.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바람직한 성장전략
Ⅳ. 시사점
Ⅰ. 국내 기업의 성장성 하락 추이
국내 제조기업의 성장성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그림 1> 참조). 매출액증가율을 기준으로 1970년대 연평균 40%에 가까운 높은 수준을 기록했던 국내 제조기업의 성장률은 하락세를 지속하여 1980년대에는 19%로 하락한 데 이어 1990년대에는 10%대 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산업이 성장기를 거치면서 성숙기에 진입하고 경쟁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성장성 하락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측면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의 성장성 하락은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성장주기에 따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기업의 성장성은 급격하게 하락했다. 매출액증가율은 1990년대 연평균 12.5%에서 2000년대에는 8.6%로 낮아졌다. 연평균 자산증가율은 1990년대 15.0%에서 2000년대 4.7%로 낮아졌고, 같은 기간 동안 유형자산증가율도 14.5%에서 2.5%로 하락했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 성장률의 하락은 급격한 금리상승과 경기위축의 충격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매출액, 총자산, 유형자산 등이 비슷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는 동안 자산증가율은 매출액증가율에 비해 하락폭이 더 컸다. 특히 상대적으로 유형자산의 증가세 둔화가 두드러졌다. 기업들이 경기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 자산의 이용효율을 높였고 투자를 줄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기업의 성장성 둔화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높은 성장세를 달성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물경제의 성장과 기업의 성장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물경제 활동이 왕성하지 못하다면 기업활동 역시 빠르게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국내기업의 성장성은 실물경제의 활동과 거의 동일한 양상을 보였다. 197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쳐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성장성이 하락했지만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제조기업의 매출증가율이나 우리나라의 명목경제성장률은 모두 10% 이하의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그림 2> 참조).
낮아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고려할 때에 국내기업의 성장성 하락을 과도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소비가 둔화되고 경제 전체의 활력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성장성만 높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매출액증가율이 명목경제성장률을 상회하고 있어 기업의 성장성이 실물경제 전체 성장성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졌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그림 3> 참조). 세계경기 호조로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기업의 매출증가율이 명목경제성장률을 상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이전과 같은 높은 성장세는 아니지만 외환위기 직후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총자산증가율이 2002년부터 상승세로 돌아섰고, 상승률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다만 기업들이 실물투자보다는 금융자산이나 지분투자를 늘리면서 유형자산투자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향후 성장잠재력 확충과 관련하여 우려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국내기업의 성장세 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패의 위협을 무릅쓰고 기업들이 투자를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투자 증가는 부실 확대로 연결되고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둔화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국내기업의 성장성 둔화가 외환위기 이전의 과속성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면 기업의 건전성 제고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경영환경의 변화와 기업의 역량에 맞는 적절한 성장 속도의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성장성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하에서는 국내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진단과 평가를 통해 성장여력을 평가해 보고, 기업가치의 관점에서 성장전략을 검토해 본다. 먼저 지속가능성장률과 기업가치창출능력의 측면에서 국내 기업의 성장여력을 평가해 보고, 최근 성장성이 성장여력과 비교해서 과연 과소한 수준인가를 판단해 본다. 그리고 성장성과 수익성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고,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성장과 수익의 균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Ⅱ. 국내기업의 성장성 진단과 평가
1. 지속가능성장률로 평가한 국내기업의 성장성
지속가능성장률(sustainable growth rate)은 추가적인 자기자금조달 없이 내부적으로 창출한 자기자본만을 사용하여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성장률을 의미한다. 지속가능성장률에는 경영성과와 재무정책이 반영되어 있어 성장성을 평가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만약 수익성이나 효율성이 뒷받침되는 않은 상황에서 실제성장률이 지속가능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내부현금이 부족하여 외부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도산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실제성장률이 지속가능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투자자금을 초과하는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성장률과 지속가능성장률을 비교하여 성장성이 과도한지를 가늠하여 볼 수 있다.
1990년대 전반 국내 제조업의 지속가능성장률은 연평균 4.1%였던 반면 실제 자산증가율은 4배가 넘는 17.3%를 기록했다. 매출액증가율도 지속가능성장률을 훨씬 상회하는 14.9%를 기록했다(<그림 4> 참조). 이는 내부에서 창출된 현금흐름이 투자자금을 충당하기에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익성이 낮은 상태에서 높은 성장성을 유지하기 위해 위부 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재무구조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난 2001년부터는 지속가능성장률이 실제성장률을 초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 이상으로 내부 현금흐름이 창출되었고 재무구조는 개선되었다. 외환위기 이전과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002년 이후 지속가능성장률과 실제성장률이 모두 하락하는 가운데 지속가능성장률이 더 많이 하락하면서 둘 사이의 격차는 점차 축소되었다. 2006년에는 지속가능성장률과 실제 총자산증가율 간의 차이는 0.3%p에 불과했다(<그림 5> 참조).
지속가능성장률과 총자산증가율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지나치게 위축되었던 성장성이 정상화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의 투자가 외부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국내기업의 성장성이 적정한 수준보다 과도하게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2. 주요국 우량기업과의 지속가능성장률 비교
국내 기업의 성장여력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우량기업을 대상으로 지속가능성장률의 결정요인을 비교하였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비금융 상장기업 중에서 시가총액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국내 시가총액 상위 기업이 외부로부터 추가적인 자금유입이나 경영성과 개선 없이 성장성을 더 높이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운용의 효율성은 미국 기업에 비해서 높았지만 수익성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경우 지속가능성장률과 실제 총자산증가율이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기업의 지속가능성장률(2000~2006년 연평균 13.6%)은 실제 총자산증가율(7.8%)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했다. 반면 일본이나 한국의 시가총액 상위기업은 지속가능성장률이 실제 총자산증가율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2006년에는 비록 소폭(일본 0.2%p, 한국 1.1%p)이지만 실제 성장률이 지속가능성장률을 초과하였다(<그림 6> 참조). 지속가능성장률과 실제성장률 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은 기업이 창출한 내부현금을 이용하여 성장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달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시가총액 상위기업이 추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부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수익성 개선 없이 추가로 성장할 경우 재무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지속가능성장률이 일본이나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 기업에 비해서 높은 것은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6회계연도 기준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중앙값 기준)은 10.9%로 미국기업의 21.5%에 비해 절반 수준에 머물렀고 일본 기업의 12.2%에 비해서도 낮았다. 또한 2006회계연도 기준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매출액순이익률은 4.8%로 미국기업(10.3%)이나 일본기업(5.3%)에 비해 낮았다(<그림 7> 참조). 이와 같이 낮은 수익성이 기업의 성장성을 제약하는 주요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업이 성장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수익성 개선이 긴요한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투자를 확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유상증자가 아닌 외부차입의 증가는 재무건전성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국내 기업의 재무구조가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기업의 평균 부채비율(130.8%)은 일본기업(121.0%)이 미국기업(109.0%)에 비해 높았다. 이는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자금을 차입하는 것이 재무건전성 유지 차원에서 상당히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한국이나 일본의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은 비교적 적정한 수준에서 성장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 기업이 투자확대를 통해 추가적으로 외형규모를 늘릴 경우 수익성 개선이 수반되지 못한다면 재무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투자확대는 사전에 철저한 경제적 타당성 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3. 가치창출능력으로 평가한 국내기업의 성장성
기업들의 성장여력을 가치창출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투자결정에는 수익성이 반드시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투자확대를 통한 성장이 경제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투자는 부실자산을 증가시키고 수익성을 악화시켜 기업 도산의 단초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외환위기 이전 국내기업은 가치창출보다는 외형확대에 치우진 성장을 추구하면서 재무건전성이 급격하게 악화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만약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면 투자를 통한 성장보다는 투자를 줄이는 구조조정 활동을 통해 수익성이 낮은 자산을 줄여나가야 한다.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본질적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자본조달비용보다 커야 한다. 기업의 본질적인 영업활동의 수익성은 투하자산수익률(Return on Invested Capital : ROIC), 자본조달비용은 차입금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뿐만 아니라 주주들이 제공한 자기자본에 대한 기회비용이 포함된 가중평균자본비용(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 : WACC)으로 측정한다. 기업은 영업활동에서 타인자본에 대한 금융비용과 주주들이 제공한 자본에 대한 기회비용 이상의 수익을 얻어야 진정으로 가치를 창출한다고 할 수 있다(ROIC가 WACC보다 커야 한다는 의미). 가치창출 능력이 취약한 기업은 투자여력도 취약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0년 이전부터 상장된 12월 결산 비금융회사 468개를 대상으로 가치창출능력을 분석했다. 2000년대 들어 전반적으로 국내 상장기업의 가치창출활동은 매우 부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평균적으로 투하자산수익률이 가중평균자본비용을 초과하지 못했다. 상장기업의 평균 ROIC는 6%를 중심으로 등락하면서 소폭의 하락세를 지속했다. 2000년대 들어 하락세를 보였던 WACC는 2004년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ROIC와 격차가 확대되었다(<그림 8> 참조). 분석대상기업 중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의 비중도 증가하다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26.7%에 그쳤던 가치창출기업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면서 2004년에는 절반 정도의 기업이 가치를 창출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가치창출기업의 비중은 감소하기 시작하여 2006년에는 36.1%로 줄었다.
이러한 결과는 기업가치창출의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크게 늘리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기업의 비중이 많아 저수익성 자산의 해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업활동에서의 수익성이 자본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약 투자가 크게 증가할 경우 비록 성장세 수준은 낮더라도 외환위기 이전과 같은 과잉투자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국내 제조기업의 약화되고 있는 현금창출능력도 투자를 제약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기업의 매출액경상이익률은 큰 폭으로 개선되었지만 매출액영업이익률은 6%대 수준에 머물면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기업의 수익성 개선이 주로 영업외활동으로부터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매출액 대비 현금흐름(영업이익+감가상각비) 비율 역시 2000년대 들어 완만하게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그림 9> 참조). 이처럼 수익성 개선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필요한 실질적인 현금창출능력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투자확대를 통한 성장성이 높아지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하여 볼 때에 경영환경의 개선없이 국내기업의 투자가 크게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높지 못해 투자를 늘릴 경우 재무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개별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을 높이는 데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판단된다.
Ⅲ.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바람직한 성장전략
기업의 성장성 둔화는 분명히 우리 경제가 극복하여야 할 문제이다. 성장성이 높아져야 국내 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증가하고 일자리가 창출되며 소비가 증가하는 등 경제 전체의 활력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 투자는 미래의 기대수익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투자 없이는 미래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수익성과 성장성에 대한 관리와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향후 바람직한 성장전략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경영성과(성장성과 수익성)와 기업가치의 관계 속에서 찾아본다.
1. 경영성과의 지속성
기업가치 창출의 관점에서 경영성과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장과 수익 중에서 무엇을 우선하여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자. 먼저 수익과 성장의 지속성을 살펴보았다.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높은 것이 이상적이지만 성장성과 수익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면 일단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경영성과 지표 중에서 어떤 속성이 우선시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1990년 이전에 상장된 335개 12월 결산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장기적인 수익과 성장의 지속성을 살펴보았다. 성장의 지속성을 살펴보기 위해 1990~1995년 동안의 매출액증가율과 총자산증가율을 1996년 이후의 기간과 비교하였다. 만약 경영성과의 지속성이 있다면 1990~1995년 동안의 수준이 그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투하자산수익률을 비교하여 수익성 지표의 지속성도 살펴보았다.
외환위기 충격의 영향을 제외한 장기적인 지속성을 살펴보기 위해 1990~1995년 동안의 매출액증가율, 총자산증가율, 투하자산수익률을 크기 순서로 335개 대상기업을 10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2000~2006년 동안과 비교하였다. 1990~1995년 동안의 순위나 수준이 그 이후 기간에도 유지된다면 지속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과거의 경영성과와 미래의 경영성과 간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은 경영성과의 지속성이 높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분석 결과,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이 시간에 걸쳐 안정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하자산수익률을 살펴보면 1990~1995년 동안의 각 그룹별 순위나 수준이 2000~2006년에도 유지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총자산증가율의 경우 1990~1995년과 2000~2006년 동안 간에 상관관계가 크지 않았다. 10개 그룹으로 나눈 1990~1995년 동안과 2000~2006년 동안 간의 총자산증가율의 상관계수는 0.20에 그쳤다. 반면에 매출액증가율은 0.81, 투하자산수익률은 0.92를 기록하였다(<그림 10> 참조). 이는 투하자산수익률, 매출액증가율, 총자산증가율 순서로 지속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1990~1995년 동안의 수익성과 성장성의 크기 순서로 나누어 상위 30%, 중간 40%, 하위 30%로 나누어 1996년 이후 기간의 추이를 살펴보면 수익의 지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투하자산수익률은 상위그룹이 비록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장기간 안정적인 추세를 유지하면서 상위 그룹을 형성했다. 반면에 성장성 지표들은 상당히 등락이 심한 불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순위도 엇갈렸다. 특히 총자산증가율은 전반적으로 하락 추세 속에서 순위 변화가 상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1> 참조).
이와 같이 성장성은 비교적 단기간 동안에만 지속되지만 수익성은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이 있었다. 성장은 양적인 투입에 의해서 달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경쟁기업도 양적 투입을 늘릴 경우 우월적인 지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수익성은 경쟁기업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수익성이 장기간 유지되는 것은 일단 확보된 경쟁력은 쉽게 소멸되지 않으며, 그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우월적인 지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성장성 중에서 총자산증가율에 비해 매출액증가율의 지속성이 더 강하게 유지되는 것도 자산의 증가가 기업의 내부적인 의지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반면 매출은 고객 만족도에 의해 주로 기업 외부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불안정성은 심하지만 지속성은 비교적 장기간 유지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결과는 수익성과 성장성 중에서 선택을 하여야 할 경우 수익성에 중점을 두어야 경영성과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2. 성장성 및 수익성과 기업가치
2000년 이후 계속 상장되어 있었던 468개 12월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가치와 성장성 및 수익성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2000~2006년 동안의 연평균 매출액증가율과 총자산증가율, 투하자산수익률로 성장성과 수익성을 측정하였다. 기업가치의 변화는 주식시장에서 형성된 주가로 측정하였다.
분석 결과, 수익성이 성장성보다 기업가치 변화와 더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률 중에서는 기업에 의해 결정되는 총자산증가율보다는 기업 외부의 고객에 의해서 결정되는 매출액증가율이 주가와 더 상관관계가 높았다. 수익성은 성장성에 비해서 주가와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투하자산수익률은 크기가 커짐에 따라 주가도 상승률이 커지는 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났다(<그림 12> 참조).
매출액성장률과 총자산증가율의 경우에도 크기가 커질수록 주가 상승률이 커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성장성과 기업가치 간에는 역 U자형의 관계가 나타났다. 성장성이 높아짐에 따라 주가상승률도 높아지면서 상위 60% 내지 70%에 속한 그룹의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지만, 성장성이 가장 높은 기업들의 주가 상승률은 오히려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지나친 성장성의 추구는 오히려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고려하여 주가변화율을 살펴보았다. 분석대상을 평균 성장성과 수익성을 기준으로 4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성장성과 수익성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그림 13> 참조). 첫째, 전체적으로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둘째, 수익성과 성장성을 겸비한 기업을 투자자들은 가장 높게 평가했다. 셋째,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의 영향력이 더 큰 것으로 판단된다. 성장성을 기준으로 평균 이하인 기업과 이상인 기업의 주가상승률 차이(총자산증가율 0.71%p, 매출액증가율 0.69%p)는 수익률 기준 평균 이하와 이상인 기업 간의 차이(총자산증가율-투하자산수익률 그룹의 경우 0.83%p, 매출액증가율-투하자산수익률 그룹의 경우 1.05%p)보다 작았다. 좀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는 성장성보다 수익성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을 개연성이 높음을 보여 주는 결과로 해석된다. 넷째, 위와 같은 결과는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성장성보다는 수익성 개선에 주력하는 것이 기업가치에 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과는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수익성과 성장성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업들이 성장성과 수익성을 모두 동시에 높이지는 쉽지 않다.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 수익성을 희생하거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성장성을 희생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성장성과 수익성 중에서 선택을 하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수익성이 높은 기업은 성장성을 더욱 높임으로써 기업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을 개선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기업가치의 관점에서 더 바람직해 보인다.
Ⅳ. 시사점
최근 국내 기업들의 투자 둔화를 심각한 문제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하지만 투자 확대는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과도한 성장 추구는 기업의 부실만을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철저하게 경제적 타당성을 따져가면서 성장전략을 추구하는 경영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경영성과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장성과 수익성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의 역량에 따라 성장성과 수익성간에 경중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수익성이 높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은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서 신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여 고객기반을 확대하면서 성장성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에 수익성이 높더라도 기업이 속한 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해 성장성 있는 투자기회를 발견하기 힘들고 경쟁심화로 수익성도 높아지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의 형태로 기업이 가지고 있는 현금을 주주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창조경영을 실천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성장보다는 수익성을 높이는 데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수익성이 낮은 기업이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 수익성을 희생할 경우 남아 있는 역량마저 훼손되면서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의 문제에 봉착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투자 부진 자체보다도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대한 투자 확대이다.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은 필요하지만, 기업의 투자 확대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고 역량에 비해 과도하게 투자가 확대되는 것을 투자 부진에 못지 않게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는 동시에 수익성 낮은 사업에 대한 투자는 억제되어야 한다. 정부에서는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규제완화와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영환경을 개선하여 투자에 따르는 수익성은 높이고 불확실성은 낮추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금융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시장기능에 의해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대한 투자가 억제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는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전망이나 신용 정보가 시장에 적시에 적절하게 충분히 투명하게 공시되도록 하는 것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기간 지속가능한 성장을 준비하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분발이 요구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