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리자는 효율적인 업무 처리와 혁신 활동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우수한 중간관리자야말로 기업의 경영 성과를 결정 짓는 주된 요인이라는 실증 연구 결과도 있다. 중간관리자를 둘러싼 논쟁을 통해, 중간관리자는 기업 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본다.
올초에 국내의 한 컨설팅사와 코리아인터넷닷컴이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직열정지수’에 대한 설문조사는, 우리 기업의 구성원 중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있는 직장인은 39%에 불과하며 특히 관리자급은 보다 심각한 수준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이 조사 결과를 살펴 보면 설문에 응답한 직원들 중 73%는 자신들이 업무 개선과 성과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고 응답했으며, 63%는 자신의 업무가 회사 전체 업무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분명히 이해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관리자들은 이 두 질문에 대해 47%와 39%만이 그렇다고 대답해 직원과 관리자 그룹간 인식 차이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관리자는 없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의 중간관리자들이 기업 내에서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조사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중간관리자들은 효율적이고 역동적인 조직 문화 형성이나 신속하고 유연한 업무 처리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경영진으로부터는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걸림돌이며, 부하 직원들로부터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감시·감독·통제 등 부가가치가 낮은 업무에 머물고 있다며 비판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간관리자들은 구조조정 때마다 첫 번째 대상으로 거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로 인해 경영자와 부하 직원들 사이에서 불안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간관리자들이 처해 있는 불안정한 위상은 선진기업들의 사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GE의 잭 웰치는 관리자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관리자란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대신 통제하고, 일을 단순화시키는 대신 복잡하게 만들고, 일을 촉진시키기보다 지배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Financial Times는 ABB와 영국의 정유업체인 BP에서 사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기업 경영에 상당한 혼란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즉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윗선으로 올라온 정보가 왜곡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지는데, 이는 의사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중간관리자들이 현장에서 올라온 좋지 않은 정보를 최고위층까지 그대로 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도산 직전의 닛산자동차를 1년이라는 최단 기간만에 흑자기업으로 되살려 놓은 카를로스 곤은 처음 닛산의 구조조정 책임자로 부임한 직후 현장 파악을 위해 중간관리자들을 배제하고 800명의 직원을 직접 인터뷰했다. 그 인터뷰 과정에서 곤은 닛산 쇠락의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고, 단절된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재건에 시동을 걸었다.
의 저자인 Tom Peters 역시 올 10월 우리나라 방문시의 강연에서 “중간관리자의 90%가 현상 유지에 급급해 조직의 변화와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들을 과감히 솎아내 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간관리자는 기업 내·외부에서의 부정적인 인식에 의해 사면초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중간관리자는 마치 기업에서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중간관리자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중간관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는 반대로, 갤럽이 과거 25년 간 수행한 연구의 결과를 정리한 는 중간관리자가 기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고 있다. 다양한 국가와 업종에 종사하는 100만명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는 직장의 경쟁력을 측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12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연구 결과 12가지 문항에 긍정적으로 대답한 직원들이 ▲생산성 ▲수익성 ▲근속률 ▲고객 만족도 등의 경영 성과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 직원들의 의식은 중간관리자에 의해 좌우
그러나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결과는 직원들의 의식 수준은 기업의 정책보다는 직속 상사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경쟁력 있는 일터를 건설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급여나 각종 혜택·동료·카리스마적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바로 중간관리자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직원들은 기업이 아니라 중간관리자 때문에 직장을 떠나기 때문에, 직원들의 이직률이 높은 기업이라면 높은 급여와 다양한 교육 기회 등의 제공에 앞서 관리자부터 살펴 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동일 기업 내의 서로 다른 단위 사업장간 비교 분석 자료인 <그림 1>은 중간관리자의 중요성을 보다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직원 의식 조사에서 상위 25%에 해당하는 매장은 하위 25%의 매장에 비해 예상 매출 대비 5.4%나 높은 성과를 기록하고 있었고, 순이익 측면에서는 목표 대비 44%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근속률 면에서도 두 집단 사이에는 연간 12명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를 기업 전체로 환산하면 전자가 후자에 비해 1,000명의 근속 인원이 더 많으며, 신규 직원의 교육에 필요한 비용 역시 2억 7천만 달러나 덜 소요된다.
동일 기업 내에서도 서로 다른 사업장마다 경영 성과 측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나 보상 수준보다 오히려 중간관리자의 관리 방식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결과이다. 결국 정책이나 제도 혹은 업무 프로세스가 어떻든 간에 각 매장에는 중간관리자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가 형성되고, 이와 같은 차이가 어떤 매장은 헌신적인 직원들로 가득한 데 반해 다른 매장은 불만이 높은 직원들로만 이루어진 곳으로 만들게 된다. 결국 유능한 관리자들이 부하 직원들을 헌신적으로 만들었고, 그 직원들이 뛰어난 경영 성과를 불러온 것이다.
A매장과 B매장의 직원 의식을 비교해 보면 이와 같은 결론에 수긍할 수 있다. A매장은 ▲인간으로서 받는 관심 ▲업무의 적합성 ▲업무 성과에 대한 인정이나 칭찬 등 모든 항목에서 B매장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각 매장별로 똑같은 자료와 장비를 갖고 있으면서도 직원들의 체감지수 면에서 4배나 차이가 나는 걸 보면, 물리적 환경마저도 관리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같은 기업 내에서도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한 문화가 존재하는가 하면, 유능한 직원들을 유인하고 유지하는 건강한 문화가 공존하기도 하는 것이다.
● 기업의 혁신 과정에서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
프랑스 Insead 경영대학원의 Quy Nguyen Huy 교수도 Harvard Business Review에 기고한 “In Praise of Middle Managers”에서 중간관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중간관리자의 업무 수행 방식을 제대로 지켜 보지 않은 채 경영 관행에 관한 글만을 읽은 사람이라면, 중간관리자는 없어질 운명에 처해 있거나 마땅히 없어져야 할 사람들인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200명 이상의 중간관리자 및 임원들에 대한 관찰·심층 인터뷰·사례 연구를 통해, 중간관리자는 특히 기업의 혁신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결론 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관리자의 중요성은 대부분의 조직에서 최고경영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으며, 만약 이로 인해 중간관리자를 대폭 축소한다면 조직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기회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중간관리자는 기업이 혁신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경영자 편에 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간관리자들이 4가지 영역에서 공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사업가(Entrepreneur)로서 중간관리자들은 경영자들보다는 현장에 가까이 있으므로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반대로 전체를 볼 수 있을 만큼 일선 업무에서 떨어져 있으므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둘째는 의사소통자(Communicator)로서 중간관리자들은 추진중인 변화를 조직 내부에 확산시킬 수 있도록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최고경영자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셋째는 치료사(Thera-pist)로서 중간관리자들은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원들의 정서적 안정에 신경 쓰고, 직원들간에 서로를 위로하는 이타적 행동을 격려함으로써 사기를 회복시킬 수 있다. 넷째는 줄타기 곡예사(Tight-rope Artist)로서 조직의 변화를 좋은 성과로 이끌기 위해서 직원들의 사기와 변화의 지속성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여, 조직의 혼란과 무기력을 통제할 수 있다.
회사의 가치와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
위에서 언급한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 할까? 일본의 오오타키 세이이치 교수는 혁신적 중간관리자의 조건으로 ▲장래 구상·비전 형성 ▲행동 지향 ▲네트워크 구축 ▲커뮤니케이션 능력·영향력 ▲조직학습의 촉매 역할을 꼽고 있다. 그러나 잭 웰치는 이 모든 것에 앞서 중간관리자의 첫째 가는 미덕으로 회사의 가치와 문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꼽는다. 중간관리자들은 통제를 통해 활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코치의 역할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하는데, 회사의 가치와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않고서는 다른 모든 능력을 갖추더라도 조직 내에서 결코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잭 웰치는 중간관리자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GE는 어떤 모습의 중간관리자를 선호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 유형의 관리자는 목표를 달성하고 GE의 가치관을 공유하는데, 이들은 GE에서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 두번째 유형의 관리자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며 GE의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관리자들은 GE에서 살아 남기 가장 힘든 경우로서 곧 회사를 떠나야만 한다.
세번째 유형의 관리자는 목표를 전부 달성하지는 못하지만 회사의 가치관을 공유한다. 웰치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집착하는 것보다 회사의 가치관을 진작시키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더 큰 관심을 갖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관리자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하다. 그리고 이런 관리자에게는 다른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마지막 유형의 관리자는 목표를 달성하지만 GE의 가치관을 신봉하지 않는 경우로서, 이와 같은 관리자들은 다루기가 가장 힘들며 GE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잭 웰치는 첫번째 유형의 중간관리자들이야말로 GE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반대로 회사의 가치관을 신봉하지 않기 때문에 GE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두번째와 네번째 유형의 관리자들을 회사에서 내보내도록 강력하게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GE의 가치관은 신봉하지만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는 세번째 유형의 중간관리자들은, 스스로 높은 생산성과 성장을 추구한다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계속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GE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Right People’이란, 단지 업무 능력만을 갖춘 관리자가 아니라 기업의 가치와 문화를 받아 들임으로써 팀의 구성원으로 함께 일하고 싶은 관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관리자와 리더의 역할 분담 필요
“Managers do things right” vs. “Leaders do the right things” 이 표현 만큼 중간관리자가 처한 현재의 위상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중간관리자는 조직 내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고, 시대는 중간관리자들로 하여금 리더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실증 연구를 종합해 보면 리더와 중간관리자는 그 역할 면에서 분명 달라야 함을 알 수 있다. 기업 경영은 결코 카리스마적인 리더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는 회사의 사명에 근거해서 장래상과 목표를 설정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개별 사업은 어떻게 전개해야 할 것인지와 같은 전략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에 반해 중간관리자는 직원들의 재능과 기업의 목표, 고객 욕구 사이의 반응 속도를 높이는 촉매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특히 급변하는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에재빨리 대응해야만 하는 현대 경영 환경에서,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