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인력, 퇴출만이 대안인가 고령 인력, 퇴출만이 대안인가

조범상 | 2005-04-01 |

인구의 고령화 속도 못지않게 기업의 고령화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업은 이에 대비해 고령 인력에 대한 시각을 새로이 하고 이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성공적인 고령 인력 관리를 위한 5가지 핵심 포인트를 짚어 본다.

 

한국은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2%에 이르러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에 들어섰다. 2019년에는 이 비율이 14%를 넘어 ‘고령 사회(Aged Society)’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생산 가능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데 있다. 경제 활동이 가장 왕성한 25~49세 연령층이 2005년 59.6%에서 2050년 45.2%로 감소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50~64세 인구는 같은 기간 20.5%에서 40.5%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구가 고령화 되면 기업 내 인력도 고령화 되기 마련이다. 조선업계의 경우, 근로자 평균 연령이 10년 전에 비해 5.6세 증가한 41.5세이며, 철강,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연령도 40세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근로자의 고령화는 기업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고령화라는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저하될 경우, 고령 인력이 기업 성과 창출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기업들의 대책은 아직 초보 수준이다. 상당 수의 기업들은 지금까지 고령 인력 해소를 위해 조기 퇴직 등의 단편적이고 수동적인 해결책으로 일관해 왔다.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 56세까지 일하면 도둑이라는 ‘오륙도’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난해 LG경제연구원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직장 생활에서 중시하는 가치 요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도전적인 업무와 일의 가치’를 1순위로 꼽은 비율이 차장급 이상 중간 관리자들은 64%인 반면 과장급 이하는 평균 40%에 불과했다. 기존 우리 기업들의 인사 관행에 비추어 보면, 중간 관리자들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일에 대한 열정과 몰입도가 높은 시기에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직장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기업은 인구 감소로 청장년층 인력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이 안정적으로 유능한 인재를 확보,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령 인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령 인력의 강점


지금까지 고령 인력에 대한 우리 기업의 관점은 비용 중심적이었다. 고령 인력이 많을수록 생산성이 저하되고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 고령 인력이 숙련된 기술과 축적된 노하우를 갖고 있어 기업 성과 창출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장기 근속 직원이 조직의 어른으로써 조직 문화를 다잡고 새내기 사원들에게는 멘토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일본의 오지(王子) 제지는 신입 사원들이 조직 문화에 쉽게 적응하고, 현장에 필요한 스킬과 기능을 조기에 습득하도록 경륜이 오래된 직원과 짝을 이뤄 업무 배치를 하는 등 고령 인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령 인력의 또 다른 강점은 20~30대 젊은 인력들에 비해 이직률이 낮다는 점이다. 노동부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연령대가 낮을수록 그리고 근속연수가 적을수록 근로자의 자발적 이직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특히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의 자발적 이직률이 5.4%에 불과한 반면, 근속 1년 미만 근로자의 그 비율은 27.6%에 이른다고 한다(2002년 기준). 직원 1인당 소요되는 채용 및 교육 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이직이 잦은 직원보다 장기 근속하는 직원이 기업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잦은 결근과 만만치 않은 의료비 부담 때문에 고령 인력을 회피하던 미국 기업들도 업무 수행 능력이 젊은 인력 못지않다는 점과 이직률이 낮다는 점 때문에 이들의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 인력을 위한 인사 관리 포인트 5


이제 우리 기업도 고령 인력을 단순히 퇴출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HR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기업 내 고령 인력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다섯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보았다(<표> 참조).

 

 

● 포인트 1 : 직무 재배치


우선, 직무 재배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직무 재배치는 고령 인력들의 잠재력과 직무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기업 생산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이다. 한 예로, 국내 A사는 인사 적체 및 임직원 고령화로 침체되어 있던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중간 관리자를 대상으로 직무 재배치를 단행했다. 동사는 적재적소에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중간 관리자를 배치함으로써 전체 조직의 최적화와 효율성 극대화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사내 공모제를 활용한 자발적 직무 이동도 고령 인력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이 제도는 프로 스포츠의 자유 계약 선수가 희망 구단과 직접 교섭을 통해 옮기듯, 자격 요건을 갖춘 직원이 원하는 부서를 지원해 자리를 이동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소니는 ‘FA(Free Agent) 제도’라는 이름으로 사내 공모제를 운영하고 있다. 즉, 50세가 된 관리직 사원들이 FA를 선언하고 사내 신규 사업이나 타직무에 지원하여 직무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동사는 이 제도를 통해 고령 인력의 경험과 지식을 다른 직무나 신사업 개척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소니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2003년을 기준으로 상장기업의 약 9% 정도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 인력의 직무 재배치는 21세기 기업이 요구하는 다기능 전문가(Multi-skilled specialist)를 육성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직무 재배치를 정리 해고의 전단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직무 재배치를 도입하고자 할 경우, 제도의 취지를 구성원들에게 명확히 납득시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 포인트 2 : 평생 학습 시스템 구축


지난 1월 발간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평생 교육 활동 참여율이 18.8%로 미국(43.6%) 등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저조한 편이었다. 특히 고령자(10% 미만)와 장년층(16%)의 교육 참여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고령 인력의 질적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훈련 기회를 늘리고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례로, 도요타는 체계적인 평생 학습 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원들의 장기 고용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다. 동사는 자격별 교육 체계를 수립하고, 이를 이수해야만 승진이 되도록 하게 함으로써 고령 인력들의 학습을 촉진하고 있다. 프랑스의 자동차 기업 르노그룹도 직원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내 평생 교육 제도를 꾸준히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지속적인 학습이 기업 발전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직원 개인에게도 직업적 성숙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학습을 통한 경력 개발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자아실현을 돕고 기업의 장기적인 인력 운용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기업은 체계적인 평생 학습 시스템 구축을 통해 각 경력별 필요 지식과 기술을 직원들에게 훈련시켜야 한다.

 


● 포인트 3 : 임금피크제 도입


우리 기업의 상당수가 연봉제를 통한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으나 여전히 연공서열에 기초한 임금 체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근속년수가 오래 될수록 능력과는 상관없이 임금 총액이 꾸준히 증가하게 되는 이런 시스템은 기업들로 하여금 고령 인력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안게 하고 있다. 최근 그 해결책으로, 일정 기간 고용을 보장하되 정해진 연령 이후에는 임금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임금피크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용보증기금이 과거 명예퇴직으로 형성된 조직 내 위화감을 해소할 목적으로 처음 도입하였다. 정년을 종전대로 유지하되 정년 4년 전인 만54세를 임금피크로 하여 이후부터 임금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수출입은행 등 금융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언론사나 공기업에서도 노사가 제도 도입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임금피크제가 일찍이 도입되었던 일본의 경우, 2003년 현재 소기업의 66%, 대기업의 77.5%가 이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제도 도입 결과 고령자 유지 비율이 2000년 45.8%에서 2003년 70.5%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고 인사 적체를 점진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개인 역시 고용에 대한 안정감을 도모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단점도 있을 수 있다. 기능직과 같이 고령자의 직무 수행 능력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 임금피크제는 반가운 제도가 아닐 수 있다. 또한 직무 수행 능력은 개인별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용불안으로 근로자의 업무의욕이 떨어지고 노사가 불필요한 긴장 관계에 있는 오늘날 우리 노동계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임금피크제 정착을 통해 고용 안정을 꾀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포인트 4 :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


한 개인에게 퇴직은 경제력 상실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준비되지 않은 퇴직이나 갑작스런 정리 해고는 직원들에게 심한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선진 기업의 경우, 개인이 겪게 될 이러한 고통과 불안감을 덜어주고 재취업을 돕기 위해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Outplacement Service)를 통한 전직 지원을 하고 있다. 이 제도는 퇴직자의 성공적인 변화 관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퇴직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을 완화시키고 전문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진로 개척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미 미국은 포천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 중 약 75%가 이 프로그램을 도입할 정도로 일반화 되어 있다. 국내 사례로는 POSCO의 ‘그린 라이프 서비스(Green Life Service)’가 대표적이다.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일대일 카운슬링, 창업과 재취업을 위한 워크샵 개최, 사내외 교육 등을 통해 퇴직 예정자들의 사회 조기 적응 및 제2의 인생 설계를 지원하고 있다. 국방부도 전역 예정 군인을 대상으로 국방취업지원센터를 통해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기 복무 전역 군인의 취업률이 27% 수준으로 저조한데다 전문적인 도움 없이는 성공적인 취업 및 창업이 어렵다는 인식이 내부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 전역 예정자 65명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한 이후, 프로그램이 성공적이라는 평가에 따라 2004년부터 참가 인원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한 전역 예정자는 “초기에는 프로그램의 효과성에 의문을 가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교육에 임했더니 적성에 맞는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웃플레이스먼트는 기업 입장에서 적절하고 원활한 구조조정을 가능케 하고 직원을 중시하는 책임감 있는 기업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특징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는 퇴직으로 인한 상실감 및 기업에 대한 반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다국적 컨설팅 업체인 DBM(Drake Beam Morin)이 아웃플레이스먼트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 내외부 이미지가 향상되고, 성과 향상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으며, 재직 근로자의 사기 진작 및 근속 유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그림> 참조).

 

 

● 포인트 5 : 재고용 제도 시행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고령 인력은 풍부해지지만 청년층 인재들의 공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노동 인력의 공급 부족으로 겪게 될 인력난에 대비하기 위해 퇴직자의 재고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 비해 고령화가 빨리 진행된 일본은 2003년 현재 전체 기업 중 67.4%가 고령자 고용 확대 제도를 시행 중에 있으며, 이중 42.5%가 재고용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 기업 도요타의 경우, 60세 정년을 맞는 모든 사원들에 대해 원칙적으로 퇴직 후 재고용을 보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수십년간 현장에서 습득한 노하우를 다음 세대 근로자에게 전수토록 하고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단순히 인력 부족 측면이 아닌 우수 인력 유지 차원에서도 재고용 제도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고령 인력 속에서도 숨은 진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P&G와 Eli Lilly사는 자사 R&D 분야의 우수 인력 퇴직자를 대상으로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여 단기 연구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우수 인재들의 기술과 경험이 퇴직으로 인해 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재고용 제도는 고용 연장을 통해 직원들의 애사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기업의 인재 투자 비용 회수 시기를 좀 더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액티브 시니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라


직원들의 평균연령이 70세 이상인 실버 택배 회사가 있다. 노인들로만 구성된 이 회사는 오토바이를 탄 젊은 택배원들보다 배달 속도는 느리지만 무엇보다 신용과 정확도를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고객들의 반응도 좋다고 한다. 나이에서 묻어나오는 믿음과 택배 전달 후, 확인 전화까지 해주는 세심한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늙음이 반드시 쇠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50대 이후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엑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이 많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기업은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고령 인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기에 기업이 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면 지속적인 기업 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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