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경영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기업역량을 극대화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 이면에 있는 잠재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지주회사 디스카운트 현상에 대해 그 원인과 의미를 짚어 본다.
정부는 IMF외환위기의 큰 원인을 기업집단의 부실과 이에 따른 도미노 현상으로 보고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사업구조, 재무구조 전반에 대한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동시에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비중의 증대, 소액주주운동 활성화로 인한 투명경영에 대한 압력은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최근 엔론 등의 분식회계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신뢰를 바탕으로 한 투명경영과 주주중심의 경영이 이제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사안이 되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소유구조의 단순화를 통한 투명경영실천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표 1> 참조).
지주회사의 장점
지주회사는 단순한 소유구조로 인해 기존의 기업집단과는 달리 다음과 같은 장점을 지닌다.
첫째, 주주중심의 투명경영이 가능해진다.
기존 국내 대기업들은 순환출자와 계열사 상호지급보증을 통해 연결되어 있어 대주주가 소수의 지분을 통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이 부분에 대한 정부조치로 많은 부분 개선이 이루어 졌으나, 주주중심의 투명경영이란 측면에서 아직 개선되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하는 경우 기업경영의 투명성은 매우 높아지게 된다. 이는 대주주가 자회사의 주식을 통해 기업을 지배해야 하기 때문에, 출자지분이 증가하고 동시에 의사결정의 관점이 자연스럽게 주주중심으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지배구조가 명확히 드러남에 따라 개별기업의 의사결정과 성과측정이 용이해진다는 점을 들 수도 있다.
둘째,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 진다.
앞에서 언급한 바있는 순환 출자와 상호 지급보증은 구조조정에 있어 큰 걸림돌이었다. 수익성과 성장성을 고려한 전사차원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자회사 구조조정은 매우 중요한데, 복잡한 소유구조는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주회사를 통한 단순한 소유구조는 부실한 자회사의 조기매각, 우량기업의 조기인수를 가능하게 해 준다.
셋째, 전사차원의 가치 창조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지주회사는 전체적인 사업포트폴리오의 성과향상과 자회사간 시너지 창출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GE의 경우 단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회사들의 제품을 다양한 서비스와 함께 패키지화하여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타사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그락소웰컴(Glaxo Wellcome)은 연구개발 전략을 개별기업 차원이 아닌 전사 차원에서 수행함으로써 신약개발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LG주간경제 594호).
자본시장에의 평가
그러면 기업경쟁력 강화의 유용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는 지주회사에 대해 주가를 중심으로 자본시장은 실제 어떠한 평가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지주회사는 자회사들의 주식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다. 그러므로 자회사의 순자산 가치를 지주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비율에 따라 가중평균하면 지주회사의 순자산가치를 구할 수 있다. 이를 주식수로 나누면 지주회사의 주당 순자산가치가 된다. 그런데 지주회사의 주당 순자산가치를 주가와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홍콩의 대표적 지주회사인 스와이어 퍼시픽사(Swire-Pacific)는 주당 순자산가치가 $58인데 반해 주가는 $33.9(9월 16일 종가)로서 약 42%가 디스카운트 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내 지주회사들(상장기업, 자산 1조원 이상)도 주당 순자산가치에 비해 평균 30% 정도 주가가 저평가 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국내외할 것없이 지주회사의 주가는 주당 순자산가치에 비해 디스카운트 되고 있는 것이다.
디스카운트 원인
기업경쟁력 강화의 유력한 대안으로 평가 받고 있는 지주회사가 자본시장에서는 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을까? 이것은 지주회사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국내 시장의 특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지주회사가 지닌 본질적인 특성으로는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자회사 배당수익에 의존하는 현금흐름의 특성을 들 수 있다. 지주회사는 대부분의 수입을 자회사 주식의 배당에 의존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많은 국내기업들은 배당보다는 내부유보를 더 선호하였다. 그 결과 시장에서는 지주회사는 낮은 수준의 현금흐름을 가지거나 많은 투자자산을 보유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는 부담을 지니게 된다.
둘째, 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을 들 수 있다. 투자자들은 지주회사의 주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우량자회사의 주식에 투자하기 보다는 직접 우량자회사에 투자하길 선호한다. 즉 고객이 1개의 종합선물세트보다는 여러 종합선물세트 중 좋아하는 과자만을 골라 먹고 싶어하는 심리와 비슷한 것이다.
셋째, 전사차원의 신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부담하는 위험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집단의 본사로서 지주회사는 수익성이 높은 신사업을 끊임없이 발굴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국내 상장 제조업체의 과거 3년간 성과를 분석해 보면 자기 사업(5.6%)보다 자회사 투자사업(0.8%)의 수익이 더 낮게 나타난다. 이는 향후 유망한 사업이나 아직 수익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리스크가 큰 신규사업은 주로 우량한 기업을 주체로 추진되기 때문이다(LG주간경제 683호). 즉 이러한 측면이 본사적 성격을 지닌 지주회사에게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넷째, 자회사의 신사업추진 능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들 수 있다.
자본시장과 주주의 단기적인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우, 자회사 평가시 중장기 평가방식보다 수익성 위주의 단기 재무지표를 통한 자회사 평가방식이 일반화될 우려가 있다. 그 결과 각 자회사의 CEO들은 중장기적인 사업보다는 단기적인 사업에 매진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한편 주주들의 배당에 대한 압력으로 인해 내부 유보에 의한 신규 투자사업 전개가 제한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대규모 신사업 전개가 위축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견해가 가치평가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지주회사의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국내시장의 특수성을 들 수 있다.
첫째, 이중과세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현재 지주회사에 대한 과세제도가 미비하여 자회사와 지주회사에 대해 개별 과세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지주회사의 배당수입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이는 결국 지주회사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둘째, 현재 국내 대형 기업들의 M&A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경우 단순한 소유구조로 인해 구조조정이 보다 쉬워지나, 국내 M&A시장이 협소하고 특히 대형 기업의 철수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그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디스카운트 현상은 비단 지주회사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며, 자체사업과 자회사지분을 통해 시너지 창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중핵기업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국내 상장기업 중 투자자산의 비중이 높은 20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상기업 중 약 85%의 기업이 추정된 가치보다 디스카운트 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디스카운트의 정도는 평균 16% 정도로 나타났다(LG주간경제 652호). 그리고 모회사 가치중에서 자회사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모회사가치는 디스카운트되는 것으로 분석(R square = 0.781)되었다(<그림 2> 참조).
지주회사를 비롯한 중핵기업은 자회사들의 본사인 동시에 모기업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들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되는 순간, 전사적으로 모든 자회사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저평가되어 있는 지주회사와 중핵기업들의 주가실태와 국내자본시장의 개방, 외국자본의 활발한 이동, 다양한 LBO(Leverage Buy Out)기법의 등장, 글로벌기업의 국내진출 등을 감안할 때, 이들 기업의 주가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저평가되어 있는 중핵기업의 일정지분을 획득하여 고평가되어 있는 자회사 주식지분을 처분하는 유형의 재정거래(Arbitrage transaction)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자금력이 제한되고 우량자회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 우량자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외국자본의 전략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지주회사의 디스카운트 대응방안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주중심의 가치경영을 하기 위해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큰 흐름으로 볼 수 있으며,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시장으로부터 디스카운트 당하고 있는 지주회사가 올바로 평가받고, 잠재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 주가관리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체계적인 IR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투명경영과 시너지 창출이라는 지주회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주가관리 역시 중요하다. 투자자들은 지주회사의 향후 자회사 관리전략 및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정보를 얻기를 희망한다. 자본시장에서 올바른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IR활동을 강화하고, 체계적인 주가관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만 기업외적 요인으로 인해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둘째, 기업 내부에 M&A역량을 배양하고, 국제 M&A시장의 흐름을 꾸준히 모니터링해 나가야 한다.
현재 태동하고 있는 지주회사는 대형 기업 M&A시장의 미발달, 대형기업 퇴출시장의 부재로 인해 활발한 구조조정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향후에는 대형 M&A 시장의 발달이 예상된다. 이제부터라도 M&A시장에서 기업을 적정가격에 거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키우고, 해외 M&A시장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여 기업 구조조정 및 신사업 창출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신사업평가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지주회사는 전사 차원의 신사업 추진을 담당하는 주체이므로 사업 추진에 대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신규사업의 리스크를 부담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사업평가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관련 인력을 확보하고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넷째, 대규모 자금조달을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자금조달 부문의 기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지주회사는 내부유보에 의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전사적 관점에서 대규모 신사업 추진에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국내, 국외 자본시장을 통한 다양한 자금조달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지주회사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업이 시장보다 우월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지주회사는 꾸준한 역량배양을 통해 자회사라는 과자들을 잘 조합하고, 투자자라는 고객에게 과자와 음료수를 같이 줄 수 있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종합선물세트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높은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주회사의 존재 이유이다. 현재 태동하고 있고, 앞으로 태어날 여러 지주회사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