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에어컨을 파는 이유 겨울에 에어컨을 파는 이유

한정민 | 2003-01-29 |

겨울철 에어컨 예약할인판매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수요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전업체들의 경영전략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당면한 다양한 장애요인을 극복하는데 유용한 경영혁신기법이 바로 제약조건이론이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성과를 극대화하는데 효과적인 제약조건이론에 대해 알아본다.

몇 해 전부터 겨울철이 되면 돌아오는 여름을 대비한 에어컨 할인예약판매가 일반화되고 있다. 소비자로서는 어차피 구매할 것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미리 구입할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생산자인 가전업체의 경우는 어떨까? 남는 재고를 처분하는 것이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일까? 이렇게 생각하고 할인판매를 결정했다면 그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 남기 어려울 것이다. 겨울철 에어컨 할인판매에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숨어있다. 그 숨은 뜻을 살펴보자.


제약조건의 극복

에어컨은 수요가 여름과 같은 성수기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전형적인 제품이다. 에어컨 제조업체로서는 수요가 존재하는 한 매출을 최대화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일차적으로는 공장설비에 제약조건이 된다. 성수기 최대 수요량에 맞춰 공장설비를 증설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성수기에는 공장가동률이 최고조에 달하지만, 비수기에는 주문량이 대폭 떨어져서 공장가동률이 심각할 정도로 낮아진다.

공장설비 뿐만 아니라 성수기의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고용한 인력도 비수기에는 유휴자원이 된다. 이러한 유휴자원은 곧 제조원가의 상승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물건은 더 많이 팔았어도 수익은 오히려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해서 일정수준으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하여 경기와 날씨에 따라 민감하게 변하는 수요를 예측해서 에어컨을 미리 만들어 둘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가전업체들은 겨울철 에어컨 예약할인판매를 통해 이 같은 제약조건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당면한 다양한 제약조건을 극복하는데 유용한 경영혁신기법이 바로 제약조건이론(Theory Of Constraints: TOC)이다.


목표에 따라 제약조건은 변해

제약조건이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장애가 되는 제약조건을 찾아내고 이를 집중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전체적인 최적화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프로세스 중심의 경영혁신기법을 말한다. 1980년대 초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인 E. M. Goldratt 박사가 개발한 이래 그 동안 AT&T, GE, IBM, P&G 등을 포함한 500여개의 서구 주요 기업과 정부기관 등에 의해 도입되어 조직의 경영혁신과 경쟁력 제고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제약조건이론을 개발할 당시 일차적인 관심의 초점은 생산공정 상에서 병목(Bottle Neck)공정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기의 제약조건은 주로 병목공정을 유발하는 생산설비와 같은 유형자원을 의미했다. 하지만 제약조건이론이 생산공정 뿐만 아니라 제품설계나 마케팅, 유통관리, 프로젝트 관리, 장기전략 수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 가능하고, 적용결과 단시간 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자 제약조건은 비효율적인 구매나 판매방식, 잘못된 정책 및 관행, 수요부족 등 무형적인 것까지 확장되었다.

제약조건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조직의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조직의 목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따라 제약조건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에어컨 공장의 예를 들어보자. 만일 조직의 목표가 원가절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제약조건은 공장설비나 인력과 같은 기업내부의 유휴자원이 된다. 따라서 해결방안의 초점은 성수기의 주문량을 다 소화하지는 못하더라도 공장가동률의 변동폭을 최소화 시키고 유휴자원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맞추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조직의 목표가 수익창출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앞서 말한 공장설비나 인력보다도 불규칙한 시장수요가 일차적인 제약조건이 된다. 따라서 자사의 상황에 맞게 어떻게 시장수요를 창출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개선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겨울철 에어컨 할인예약판매는 단순히 재고처분보다는 수요예측과 창출, 분산이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비수기인 겨울철로 수요를 분산시킴으로써 공장가동률의 편차를 줄일 수 있다. 이는 곧 고정비의 감소로 이어져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다.

둘째, 할인판매를 통해 구매동기를 자극함으로써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성수기의 에어컨 판매량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막상 여름이 서늘한 경우 부진한 판매를 극복하기 위해 할인판매를 계획해도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돌아올 여름에 대한 정보가 없다. 따라서 할인판매를 통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미리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셋째, 예약판매는 재고 처분과 달리 정확한 수요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어 재고관리에 용이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어, 성수기 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불만도 예방할 수 있다.

이처럼 겨울철 에어컨 할인예약판매는 소비자로서는 저렴한 가격에 미리 구입할 수 있고 가전업체로서는 성수기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수요를 분산시킴으로써 제약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에게 유리한 윈-윈(Win-win) 게임이다.


제약조건이 경쟁력 결정

제약조건이론에서는 기업을 유·무형의 자원들이 고리형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집합체로 본다. 사슬의 힘은 사슬을 이루고 있는 고리들 중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서 결정된다. 전체사슬에 힘을 가할 때, 다른 고리들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의 고리가 약하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진다. 사슬의 힘을 늘리기 위해서는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어 그것을 강화해 주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경쟁력은 가장 취약한 부분, 즉 제약조건에 따라 결정되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약조건을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제약조건의 개선 없이는 다른 부분들의 개선활동이 목표달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 전사차원의 원가절감운동이나 생산성 향상 캠페인을 실시한다. 그러나 제약조건의 개선이 선행되지 않은 일률적인 개선활동은 자원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효과적인 어시스트나 골 결정력에 대한 보완 없이 경기시간 내내 열심히만 뛰어다니는 축구경기와 같다. 결과적으로 체력만 소모하고 경기에서는 패배하게 된다.

최근 일본과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던 Goldratt 박사의 “The Goal”이라는 책에서 보면 가장 취약한 생산공정에 맞춰 기타부문의 생산성을 일부러 떨어뜨려 중간재고를 줄이면서 오히려 기업전체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방안이 불황극복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약조건이론을 응용하여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사례이다.


지속적인 경영개선이 목표

한정된 자원으로 끊임없는 수익창출이라는 기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약조건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적극적인 해결방안 모색이 필수적이다. 제약조건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다음의 5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 시스템의 제약조건을 찾아낸다.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고리 중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는 단계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약조건은 조직의 목표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제약조건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의 목표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제약조건을 찾아내고 나면 목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다.

2단계: 제약조건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시스템의 능력은 제약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 제약조건의 능력이 곧 조직 전체의 능력이기 때문에 제약조건을 찾아내면 관리의 초점을 제약조건에 맞추어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는 방안을 모색한다.

3단계: 시스템의 모든 활동은 제약조건을 최대한 이용하는데 종속시킨다. 관리의 초점을 제약조건에 맞추게 되면, 조직 내 다른 비제약조건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비제약조건은 제약조건에 비해 초과생산능력 또는 여유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초과생산능력이 생산활동에 쓰여지게 되면 과다한 재고가 쌓이는 등 문제점을 야기한다. 따라서 비제약조건의 활동을 제약조건의 활동에 종속시킴으로써 모든 자원을 동기화(Synchronization)시켜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4단계: 시스템의 제약조건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동기화를 거쳐 자원간에 효율성이 유지되면 제약조건의 공급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시스템 전체의 공급능력을 향상시킨다. 2단계의 초점이 생산시설의 변화 없이 숨겨져 있는 공급능력을 찾아내어 제약조건을 최대한 가동하는 것이라면 4단계에서 말하는 공급능력의 향상은 새로운 설비투자나 고용증대와 같이 공급능력 자체를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5단계: 4단계에서 제약조건이 제거되었다면 다시 1단계로 돌아가 전과정을 반복한다. 4단계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면 제약조건은 이제 더 이상 제약조건이 아니다. 대신 조직 내외의 환경변화로 인해 새로운 제약조건들이 등장한다. 따라서 다시 1단계로 돌아가 새로운 제약조건을 찾아내고 이를 관리하는 전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조직의 성과개선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조직구성원이 타성에 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1~4단계를 거치면서 제약조건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시스템의 개선이 이루어지면 한번 성공한 방식이 자칫 타성이 되어 상황이 변했을 때 오히려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타성은 때때로 제약요인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신속한 경영에 유용

그 동안 수많은 경영혁신기법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해왔지만 제약조건이론은 개발된 지 20여년이 넘도록 많은 기업들에 의해 도입되면서 진화·발전해 왔다. 제약조건이론이 경영현장에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본원리가 이해하기 쉽고 오랫동안의 현장경험에서 체득한 실무자들의 직관과 일치하기 때문에 도입이 용이하다. 둘째, 시스템의 제약조건을 찾아 집중적으로 개선하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경영개선의 성과를 볼 수 있다. 셋째, 프로젝트 관리, 유통, 가격결정, 물류, 장기전략 수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넷째, 무엇보다도 ERP나 6시그마 등 다른 경영혁신기법들에 비해 투자비용이 적어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경영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지고 있다. 기업으로서는 다양한 장애요인을 경쟁자보다 먼저 극복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유연하고도 신속한 경영,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경영이 요구되는 때이다. 제약조건이론은 이러한 경영의 요구에 유용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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