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 2002-08-07 |
투자자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기업들이 초우량 기업으로 우뚝 서는 반면,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최대의 에너지 회사인 엔론과 업계 2위의 장거리 통신 회사인 월드컴 등이 회계 부정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 파산하거나 파산 보호 신청을 한 상태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외국 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국내에서도 각종 게이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경영 투명성이 낮은 기업들은 주가 폭락은 물론 자금 차입 조차 힘들어지면서 퇴출 위기에 몰려 있다. 이에 따라 기업 경영에 윤리와 도덕 개념을 적용하는 윤리경영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윤리경영의 의의
일부에서는 윤리경영을 임직원들의 부정부패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나 한때 유행하는 경영 혁신의 도구 정도로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의미의 윤리경영이란 기업의 경제적, 법적 책임 수행은 물론, 사회적 통념으로 기대되는 윤리적 책임의 수행까지도 기업의 기본적인 의무로 인정하고 주체적인 자세로 기업 윤리 준수를 행동 원칙으로 삼는 경영을 말한다(<그림 1> 참조). 즉,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고객, 주주, 종업원, 경쟁자, 공급자, 정부, 지역 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기업 경영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윤리경영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기업의 이윤 추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경영은 기업이 막연히 도덕적이 되자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잘못된 관행이나 비용 구조를 윤리적인 기준에 맞도록 바로잡아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하자는 맥락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윤리경영이 왜 중요한가
기업윤리에 대해 새삼스럽게 많은 기업들이 다시 주목하는 이유로 앞서 설명한 환경 변화를 일차적으로 들 수 있다. 더구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재인식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첫째, 윤리경영은 기업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역할이나 활동을 하여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인 신뢰를 얻는데 기여할 수 있다. 시장 경제 체제하에서 기업의 생명은 소비자, 투자자, 금융기관 등 시장의 신뢰에 달려있다. 초우량 기업이라 하더라도 신뢰성이 떨어질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타이코 등이 실적을 부풀렸다는 루머가 증권가를 떠도는 순간 주가가 곤두박질한 것도 윤리경영이 시장의 신뢰와 얼마나 관계가 깊은지를 새삼 일깨워 주는 사건이다.
둘째, 윤리경영은 기업의 경영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구성원의 정당한 대우가 보장되는 등 높은 수준의 윤리성이 유지되는 기업에서는 구성원도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이 생겨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실제 여러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윤리경영을 잘하는 기업의 경영 성과가 상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전경련이 2001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 윤리를 제정한 기업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4년 간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7.71%로 미제정 기업의 평균치인 5.54%보다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해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포천지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존경 받는 10대 기업’에 속한 기업들의 1995~2000년 평균 주가 상승률이 41.4%로, S&P 500대 기업의 16.5%를 크게 앞서 기업의 가치와 윤리경영간의 관계가 밀접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2> 참조).
셋째,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평가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잣대로 윤리경영이 최우선 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세계기업윤리표준안’을 세우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엔론 사건을 계기로 윤리경영 여부를 상장 기준에 포함시키기 위한 제도를 준비 중에 있다. 또한 미국 기관 투자가들은 최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보다 강도 높은 윤리경영을 요구하고 있으며, 회계가 투명하지 않거나 지배 구조개선이 부진한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축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앞으로 기업 윤리를 무시하거나, 국제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기업은 세계 시장의 투자나나 소비자 단체들로부터 외면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윤리경영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하여
윤리경영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절감한 국내 기업들은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투명한 구매시스템을 활용한 구매 비리 근절, 접대·향응 한도 설정, 사장 직속의 전담팀 구성 및 윤리강령 제정, 감사 강화 등 다각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 시행하는 등 윤리경영 확립에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회계 투명성 및 지배구조 개선, 협력회사와의 납품 비리 근절 등의 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비해 아직 멀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실제 2001년에 실시된 ‘IMD 국가경쟁력 평가’를 보면 국내 기업들의 윤리경영 순위가 전체 49개국 중 39위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윤리경영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 뿐만 아니라 정부, 학계 등 사회 각계에 걸친 종합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그림 3> 참조).
첫째, 최고경영자는 윤리경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전환을 바탕으로 윤리경영 도입 및 추진 과정에 있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직 많은 기업의 경영자들은 윤리경영을 잘하면 절약할 수도 있는 비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이나 매출 확대를 위한 투자로서 윤리경영을 인식하고 추진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이를 위해서 최고경영자는 추진 과정에서 생겨날 기업 윤리 준수에 관한 여러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진 최고윤리경영자(Chief Ethical Officer)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고경영자 자신이 윤리적이지 못하고 윤리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등 윤리적 리더십을 가지지 못할 때 기업의 윤리 생명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엔론 파산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최고경영자인 케네스 레이의 부도덕성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둘째, 제도 측면에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윤리경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윤리경영 추진 사례를 보면 윤리강령 선포 후 이에 대한 실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 내 윤리경영 시스템을 도입하여 윤리경영 활동을 인력 관리나 동기 부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경영 활동에 반영하게 되면 실천력을 한층 높일 수 있게 된다. 윤리경영 시스템의 구축은 윤리강령 제작·선포, 임직원에 대한 윤리 교육, 비윤리적 행위 감독 체계, 실천에 대한 평가 등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국내의 경우 윤리강령의 내용이 아직 선언적인 수준에만 그치는 기업도 적지 않은 편인데, 실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국처럼 기업 내부고발제를 도입하는 등 윤리강령이 강제력을 갖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셋째, 윤리 담당 임원을 선임하고 전담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윤리경영을 기업 내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 전담 조직의 신설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고위급 임원을 윤리경영 책임자로 선정해야 한다. 윤리경영 전담 조직의 권한이 미약할 경우 기업의 사정이나 외부 경영 환경 변화에 따라 중요도나 시급성에서 밀려 윤리경영 추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제지업체인 인터내셔널 페이퍼의 경우 윤리경영 전담 부서의 강력한 지휘 아래 전 직원에 대한 엄격한 윤리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넷째, 정부 차원에서는 기업의 윤리경영 정도를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어 우수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우수 윤리경영 운영 기업에 대한 형벌 경감 지침’을 제정하여 평소 윤리적인 기업 운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기업이 잘못을 해 처벌을 받게 될 경우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처벌을 경감해 주고 있다. 또한 우수 기업에 대해 세금 감면, 조사 면제, 공공기관 입찰 우대 등의 인센티브를 통하여 윤리경영을 장려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매년 수여하는 품질 관리 대상인 ‘말컴 볼드리지상(Malcolm Baldrige National Quality Award)’ 수여를 통해서도 윤리경영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다섯째, 학계에서도 기업윤리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기업윤리가 일부 대학에서 과목으로만 개설되어 있는 수준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윤리경영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의 경영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필수 강좌로 만들어 학생들과 기업인들에게 기업윤리를 교육함으로써 기업들의 윤리경영 노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여섯째, 사회적 윤리 요구 수준 제고, 윤리적 기업 발굴 등 사회적 윤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윤리적 기업은 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즉, 소비자가 윤리적 기업만을 선호하고 비윤리적인 기업은 가차없이 외면하는 등의 윤리 환경이 조성되고 윤리적 경영 기업을 발굴하여 칭찬해 주는 시스템이 활성화되는 사회에서는 기업들 또한 윤리경영의 수준을 높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에는 비영리단체인 ‘경제최우선협의회(CEP)’가 매년 선정하는 ‘양심기업상’, 포천과 월스트리트저널이 매년 발표하는 ‘가장 존경 받는 기업’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윤리적 기업을 칭찬하는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있다.
윤리경영의 대명사 : Johnson & Johnson
존슨앤존슨은 1999년, 2000년 연속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하는 ‘미국의 존경 받는 기업 1위’에 꼽힌 기업으로서 윤리경영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존슨앤존슨의 본관 건물에 들어서면 사람 키보다 조금 큰 석판에 새겨진 ‘우리의 신조(Our Credo)’를 만나게 된다. 1943년 이 회사 설립자의 손자인 로버트 존슨이 처음 명문화한 ‘우리의 신조’는 미국식 기업 윤리강령의 대표격으로 꼽힌다. 50년 이상 윤리강령을 경영에 반영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온 미국에서도 존슨앤존슨은 ‘기업윤리(Business Ethics)’분야의 선두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자칫 그럴싸한 웅변에 그치기 쉬운 윤리강령이 존슨앤존슨의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데에는 ‘타이레놀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 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주력 제품인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 7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회사는 발 빠르게 ‘고객에 대한 책임’을 명시한 ‘우리의 신조’에 따라 행동했다. 존슨앤존슨은 시카고 지역 제품만 수거하라는 미국식품의약국(FDA) 권고를 뛰어넘어 전국에서 약 3,000만병, 1억 달러 어치의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했다.
또 “사건 원인이 규명되기 전에는 타이레놀 제품을 절대 복용하지 말라”고 소비자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타이레놀은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의 7%(3억5,000만 달러), 이익의 17%를 차지하는 주력 상품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조치는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사건 직후 35%였던 시장점유율은 7%까지 떨어졌으나 3년 만에 제자리를 회복했다. 소비자들이 존슨앤존슨의 윤리적 태도를 신뢰하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존슨앤존슨에는 ‘우리의 신조’와 함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과정이 한 가지 더 있다. ‘빨간 얼굴 테스트(Red Face Test)’라 불리는 불문율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나 행동을 자신의 가족에게 얼굴을 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윤리적이었는지 자문하는 것이다.
* 자료:신문 기사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