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로 IMF 관리 체제를 공식 졸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IMF의 그림자인 긴축 경영은 상시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우리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전략 없는 긴축은 득보다 실이 크지 않을까?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IT 분야를 중심으로 시작된 불황과 긴축 경영의 모습이 IT분야를 넘어서서 전 산업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소위 초우량 기업이라 여겨지던 GE, 휴렛 패커드, 모토로라 등의 기업들도 감원, 추가 감원의 계획을 연일 발표하고 있고, 일본 경제를 지탱해오던 제조 강자들도 적자로 전환되거나 아주 미미한 이익을 낸 것으로 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더욱 우울한 것은 신경제의 호황을 이어갈 차세대 기술에 대한 시장 전망이 점점 더 비관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불황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됨에 따라 주요 서비스 업체들이 IMT 2000, 디지털 방송 등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Killer Application에 대한 투자를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세계 경제에의 동조화 현상과 보수적 경영 관행이 강화된 한국 경제는 전세계적인 시장 침체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허리띠를 바짝 조이는 모습이다. 특히 설비 투자를 중심으로 한 각종 투자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확산되는 긴축 경영
전통적으로 한국 기업 특히, 대기업은 불황기에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여 기업의 성장을 추구하는 성장 지향적 불황 대응 전략을 보여 왔었다. 다각화된 사업구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황시에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자금을 차입해 핵심 사업에 대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중심적 불황 대응 전략은 외환 위기를 계기로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30%대의 살인적 고금리와 저평가된 환율이 우리 기업들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간접 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을 지양하고, 내부 현금 흐름 내에서만 투자하는 보수적 투자 관행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보수적 투자 패턴이 한국 기업의 기본 투자 전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경제 전체에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IT를 중심으로 실물 시장의 불황이 깊어지자 기업들은 또 다시 초 긴축 경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외환위기로 인해 야기된 IMF때의 전략과는 그 방향성을 달리 가져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외환위기가 기형적 재무 구조로 인해 야기된 극심한 ‘유동성’의 위기라면, 지금의 위기는 IT시장의 주력 상품이 차세대 제품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기적 불황’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이번 불황을 보는 눈은 외환 위기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설비투자가 8개월째 감소하고 있고, 상시적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인력 감축과 비용 감소를 강화하는 긴축 경영에 돌입하는 기업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긴축 경영의 함정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원 감축, 비용 감소 등을 통한 긴축 경영이 언제나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긴축 경영의 성과가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고, 오히려 기업의 전략적 자산을 훼손하면서 제2, 제 3의 긴축 경영을 불러 일으키는 악순환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 감원의 한계
실제로 인력 감원의 성과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조사도 발표되고 있다.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28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Bain & Company의 조사에 따르면, 1998년의 불황 때 3% 이상의 인력 감원을 단행한 기업들의 주가가 그 보다 작은 규모의 인력 감축을 실시하거나, 인위적인 인력 감원을 전혀 단행하지 않은 기업의 주가보다 감원 후 3년 동안의 상승률이 높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Lucent, Digital Equipment등 처럼 전체 인력중 15%이상의 감원을 단행한 기업들의 성과는 시장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주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물론, 감원 자체가 전략의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므로 이들 기업의 주가가 나머지 기업에 비해 높지 못한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력 감원을 실제적 구조조정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한국적 기업 풍토 속에서, 악화된 기업 성과의 회복이 감원을 실시한다고 해서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원이 예상외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 있는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가 1998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인력 감축을 단행한 직후 한 주 동안에 해당 경영자가 심장 마비를 겪을 확률이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만큼 인력 감축이 경영자에 주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인력 감축이 경영자에게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니다. 조직 전체적으로도 인력을 재배치하고, 교육하고, 남아 있는 인력의 충성도를 높이는 것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정상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기가 좋지 않아 아무 말 없이 회사에 남아있던 핵심 인재들도 상황이 좋아지면 회사를 떠나게 되고 조직은 또 한번의 몸살을 앓게 된다. IMF 직후의 벤처 엑소더스를 통해 한국 기업들은 이런 일련의 비용을 경험한적이 있다.
● 무리한 비용 절감은 지속적인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도
긴축 경영의 대표적 정책 중의 하나인 비용 절감도 때로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 비용 절감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한 경영 성과의 개선을 가져오려는 본래의 목적과는 반대로, 무리한 비용 절감이 제품 및 서비스 질의 하락을 가져와 고객 불만을 높이고 매출 감소를 야기하고 지속적인 경영 성과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Continental 항공사의 경우 1990년대 초반 경영 성과가 악화되자 극단적인 비용 절감 정책들을 실시했다. 대표적인 것이 연비개선을 목표치 이상으로 달성한 조종사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정책이었다. 실제로 연비 사용량은 줄었고, 조종사들은 보너스를 지급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연비 개선을 달성하는 방법이었다. 조종사들은 연비 개선을 손쉽게 달성하기 위해 항공기의 에어컨을 종종 끄고 다녔고, 적정 속도 이하로 비행기를 운항 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승객들의 불만과 항의가 커져 고객 불만은 극에 달했고,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비행기로 인해 환승 시간을 놓친 승객들을 다른 비행기로 연결해 주는데 드는 비용이 더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자 Continental 항공사의 수익성은 나빠졌고, 수익성 확보를 위해 추가적인 원가 절감 정책을 취하게 된다. 1등석의 숫자를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일부 비행기에선 아예 모든 1등석을 없애 버리기도 했었다. 총 좌석수를 늘림으로써 좌석 당 비용을 줄이기 위한 의도였다. 그렇지만 Continental 항공상의 수익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장 수익성이 좋은 비즈니스 고객들이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결국 Continental 항공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모든 음료, 여행사에 대한 리베이트, 기업 고객에 대한 할인 까지 없애버렸다. 비용 절감에만 매달린 15년여의 노력을 통해 Continental 사가 얻은 것은 매출 감소로 인한 지속적인 수익악화와 두 번의 부도뿐이었다.
● 납품 업체 닥달하기의 한계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제조업체가 불황에 직면하여 자주 쓰는 또 하나의 정책 중의 하나는 납품 업체의 납품 단가를 일방적으로 떨어뜨려 수익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장 불황의 여파를 상당부분 부품 업체에게 전이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치게 단기적인 접근 방법으로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크라이슬러사의 사례는 이러한 접근 방법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90년과 1991년의 불황기 때, 크라이슬러사는 납품 업체들을 들볶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을 분담하고 긴밀한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좀 더 많은 부품들의 아웃 소싱을 통하여 자사 부담을 줄이면서, 납품 업체의 매출 성장을 유도하였고, 재고를 줄이면서, 사이클 타임을 빠르게 가져간 것이다. 또한 납품 업체가 10% 비용 삭감 방안을 제시할 경우, 그 혜택을 절반씩 나누어 가지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렇게 절감된 비용을 신차 개발에 집중 투자할 수 있었고, 강화된 납품 업체와의 관계는 신차 개발의 효율성과 질을 높이는 촉매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92년 크라이슬러사는 미국 Big 3 업체 중 유일하게 이익을 낸 업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다임러 벤츠와의 합병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크라이슬러는 납품 업체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을 취하기 시작했다. 2001년 1월부터 시작된 이 계획의 요지는 지금까지 모든 납품 계약을 백지화하고 일괄적으로 5%의 비용 삭감을 주문하는 내용이었다. 이 권고 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기존 계약은 유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2003년까지 추가적으로 10%의 원가를 절감시킬 방안을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에 일부 공급 업자들은 크라이슬러사에 대한 납품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더 이상 크라이슬러사에게 최상의 품질과 최신 기술로 제작된 제품을 납품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어 크라이슬러의 이번 정책이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다고 한다.
원가 절감 정책은 분명히 중요하고, 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게 된다. 싼 가격만큼 좋은 경쟁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원가 절감을 추진하면서도 기업의 이해 당사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일관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시장 상황에 따라 자기에게만 유리한 입장을 취할 경우 단기적인 비용 감소 이상의 전략적 자산들을 상실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은 긴축 경영 어떻게 하나?
그렇다면 이러한 긴축 경영의 폐단을 피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선진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 나가고 있을까?
● 시설투자는 줄이고 R&D 투자는 강화하는 선진 기업
이를 위해 이번 불황의 여파를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휴대폰 Big3(노키아, 에릭슨, 모토로라)들의 분기 실적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매출과 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 듬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들의 올 상반기 R&D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하거나 동일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웃 소싱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는 제조 부문에 대한 시설 투자의 규모는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는 R&D 투자는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그 규모를 늘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장 대응력을 높이고 브랜드 자산을 강화하는 판매비와 일반 관리비 측면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계절적 요인을 감안할 때 전년 동기 대비 극단적인 감소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그림 1> 참조). 컴팩이나 휴렛 패커드 등과 같은 PC 메이커들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흔히, 구미 기업들은 분기마다 실적을 발표하고 주가에 민감해서 단기 성과 중심적인 경영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장기적인 투자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시장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불황 대응 방향은 전략적 지향성이 명확해 보인다. 전부서 10% 비용 절감이나, 일괄적인 10% 인력 감축과 같은 편의주의적 구조조정이 아닌, 핵심에 대한 투자를 확보하기 위한 비핵심의 긴축이라는 논리적 접근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 기업들도 이러한 추세는 마찬가지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의하면 332개 일본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1년도 R&D 투자 활동에 따르면 과반수인 173개사가 올 해 R&D 투자를 지난해 보다 많이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고 한다(<표 1> 참조). 회사 당 평균 R&D금액은 6.6%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특히 지난 4~6월 중 2백억엔의 영업 적자를 낸 마쯔시타,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이번 불황의 여파가 큰 NEC, 미쯔비시, 도시바 등도 미래 핵심 사업에 대한 R&D 투자는 계속 늘릴 방침이라고 한다.
● M&A 및 시설투자 확대하는 제조전문(EMS) 업체들
그렇다고, 구미의 모든 업체들이 시설 투자는 줄이고 R&D 투자를 늘이는 것은 아니다. 제조 기술의 전문성과 Global Network을 통해 핵심 고객에 대한 밀착 서비스를 주무기로 하는 EMS 업체들은 IT 불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설투자와 동종 업체에 대한 M&A를 강화하면서 그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그림 2> 참조). EMS 업계 1위 업체인 솔렉트론의 경우, 지난 8월 9일 업계 10위 업체인 C-Mac에 대한 합병을 발표했다. 자동차, 통신 장비 부문에 있어 핵심 기술을 보유한 C-Mac을 인수함으로써, 향후 아웃소싱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 되는 자동차 부문과 고급 통신 장비 부문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뿐 아니라 올 2분기 및 3분기에 Cisco, Nortel, IBM등 주요 고객의 제조 시설도 지속적으로 인수하였다고 한다. 솔렉트론 뿐만 아니라 업계 4, 5위 업체인 SCI와 Sanmina도 지난 7월 16일 합병 발표를 했다. 이번 합병을 통해 이들 두 업체는 플렉트로닉스와 셀레스티카를 제치고 업계 2위로 도약하게 되었다. 갈수록 규모의 경제와 글로벌 서비스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EMS 산업에서의 지속적인 성장과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결국, 구미와 일본의 선진 기업들은 불황에 직면하여서도 각자 자신의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투자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설 투자 줄이는 한국 기업, 대안은?
그렇다면 한국 기업의 불황 대응은 어떤 모습일까?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시설 투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향후 확대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 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은행들의 시설 자금 대출은 1,154억원 줄어들었다고 한다. 지난 해 상반기 시설 자금 대출이 9,463억원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감소세라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은행이 7월말 주요 업종의 대표 기업 87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규 투자를 줄이거나 내년 이후로 미루겠다는 기업이 46%인 반면 늘리겠다는 기업은 5.8%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설 투자의 감소를 우리 기업들이 핵심 역량을 제조 중심에서 연구 개발 중심으로 바꾸어 가고 있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을까? 한국 은행의 기업 경영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제조업 전체로는 98년 전체 매출의 0.6%를 차지하던 연구 개발비가 2000년 전체 매출의 1.1%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0.8%에서 1.3%로 늘어 났다(<표 2> 참조). 가장 연구개발을 많이 한다고 하는 전자 산업의 간판 기업의 경우에도 매출액의 5%를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투자로 한국 기업의 핵심 역량이 시설투자에 의한 규모의 경제에서 연구 개발 역량으로 이전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조금씩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결국 우리 기업들이 경쟁해야 할 구미 선진 기업 및 일본 기업들의 R&D투자 금액에 비교하면 너무나 미미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키아, 에릭슨, 소니, 마쯔시타와 같은 기업들의 경우 매출의 6~15%까지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고, 마쯔시다의 한해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우리 제조업 전체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와 비슷하다(<표 3> 참조). 이런 상황에서 연구 개발에 대한 일정 정도의 투자 증가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설투자 감소는 한국 기업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매출의 10%이상을 차지하는 시설 투자는 급격히 위축 시키면서, R&D 나 마케팅 투자가 대폭 강화된 것이 아니라면 과연 한국 기업은 앞으로 무엇을 기반으로 경쟁할 것인가? 혹시 경쟁 전략에 대한 명확한 판단 없이 ‘첨단’과 ‘유행’만을 쫓아가다 우리의 경쟁우위를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일부 선진 기업들은 우리 기업의 전통적 강점이라고 여겨지는 제조 역량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제조 전문 기업인 EMS 업체가 성장하면서 미국의 제조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도, 일본기업 경쟁력은 바로 제조에 있으며 그 제조가 이루어지는 곳이 생산 현장이라고 믿고 생산 현장의 혁신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실업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서유럽에서도 지난 해 엔지니어링 분야의 고용은 0.6% 증가했으며 올해도 이 분야의 고용 증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conomist지에 의하면, 자동차 부품 및 항공기 엔지니어링 제품의 기술적 수준이 점점 더 정밀해지고, 안정성이 중요해지면서, 임금이 높지만 숙련된 노동자를 고용하고 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쟁전략 명확화의 계기로
결국, 한국 기업도 경쟁 전략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과연 우리의 경쟁 우위를 무엇으로 가져 가야 할 지에 대한 고민 없이 긴축 경영만 되풀이 된다면 5년 후 혹은 10년 후 우리 기업의 경쟁 우위는 급격히 약화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통해 부족하지만 재무 구조의 건전성이 강화되었다면, 이번 불황은 우리 기업들로 하여금 경쟁 전략을 명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