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돌풍, 세계 석유화학 산업 판도 바꾼다 사우디 돌풍, 세계 석유화학 산업 판도 바꾼다

박정아 | 2007-08-06 |

경기호조세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에는 때아닌 대규모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이는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성장, 특히 사우디의 돌풍과 무관하지 않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중동 석유화학 산업이 어디까지 성장했으며, 이에 따른 영향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얼마 전 세계 최대의 석유화학 기업 Dow가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와 중동 투자가에 의해 인수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저 범용 석유화학 기업의 대표 정도로만 생각되었던 SABIC(Saudi Basic Industries Corporation, 사우디 국영 석유화학 기업)이 GE Plastics를 인수하면서 세계 최대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기업으로 등극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Mega-Deal의 중심에 서 있는 중동 기업의 대활약상은, 과연 고유가를 틈탄 일시적인 현상일까?


최근 에너지 산업 동향, 그리고 중동의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해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이란, 이라크의 석유 생산이 둔화되고 있는 사이 OPEC의 영향력은 사우디 단일 세력을 중심으로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55달러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오일 머니에 따른 중동 경제 부흥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과거 유가 급락이 자국 경제에 미쳤던 엄청난 파급 효과를 기억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은 막대한 오일 머니를 활용하여 유가 의존적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림 1> 참조). 전방 연쇄 효과가 높은 석유화학 산업의 ‘다각화’, ‘고도화’가 이러한 경제 정책의 핵심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고유가가 장기화되면서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잠재력 또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중동 석유화학 발전의 모델 격인 사우디 석유화학 산업의 성장 전략을 통해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들이 극심한 불경기에나 시도할 만한 구조 조정을 최근과 같은 경기호황기에 왜 추진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은 물론, 향후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사우디의 석유화학 산업 육성 3대 전략

 

1. 해외 생산 거점 확보

 

최근 사우디 석유화학 기업들의 행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 중 하나는 바로 해외 생산 거점 확보다. 과거 해외 기업의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해 성장해왔던 사우디 석유화학 기업이 이제는 역으로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 석유화학 기업의 해외 진출은 크게 두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신흥 시장의 경우 주로 그린필드(Green Field)형 직접 투자가 중심이 된다. 사우디 Aramco가 2007년 ExxonMobil, 중국 Fujan Petchem과 연간 350만 톤 규모의 정유(Refinery) 연계형 설비(폴리올레핀 및 아로마틱 제품을 생산) 합작 투자에 합의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주로 중국과 인도가 타겟이 되고 있는 신흥 시장 투자는 판매 시장에 대한 사업 노하우 확보가 주된 목적이다. 내수 시장은 제한적인 반면, 석유화학 제품 생산은 급증하고 있는 중동 석유화학 기업에게 해외 신 시장 개척은 사업의 성패를 가름 짓는 주요 과제이다.


반면에, 선진 시장에 대해서는 그린필드형 직접투자 보다는 M&A 방식이 선호된다. 기존 R&D 인프라는 물론 마케팅 네트워크까지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구미 기업에 대한 M&A는 중동 기업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이러한 장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SABIC은 이미 DSM 석유화학 부문(23억 유로, 2002년), Huntsman 영국 석유화학 사업(7억 달러, 2007년)에 이어 최근 세계 최대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기업 중 하나인 GE Plastics 인수(116억 달러, 2007년)를 발표했다.


범용 석유화학 기업의 대표격인 SABIC의 이번 GE Plastics 인수가 겉보기에는 갑작스럽고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인수는 기존 사업과의 높은 시너지를 염두한 SABIC의 철저한 사전 준비 하에 진행된 일이었다. SABIC은 Kayan 프로젝트(SABIC 지분35%)와 Petrokemya 프로젝트를 통해 각각 PC와 ABS 생산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GE Plastics 인수는 SABIC이 PC, ABS 생산을 넘어 단 시간 안에 PC와 ABS 복합재료 등으로 한 차원 높은 R&D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와 함께 SABIC의 CEO인 Al-Mady가 주목한 GE Plastics 인수의 또 다른 가치는 바로 ‘미국 시장 진출’이다. 범용 석유화학 수요가 많은 아시아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고부가 제품의 수요가 높은 북미 시장 진출은 시장 다변화를 원하는 SABIC에게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과제였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가 SABIC이 ‘사우디 국영 석유화학 기업’이 아닌 ‘Global Company’로 성장해가는 주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Al-Mady의 발표는 SABIC이 향후 미국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보다 가속화 할 것임을 시사한다.

 

2.Plastic Conversion Park 구축

 

주요 기업의 해외 진출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강화 하는 동시에 사우디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두 번째 과제는 「Plastic Conversion Park」를 통해 자국 산업 경쟁력을 제고 하는 것이다.


사우디의 석유화학 산업은 순수 에탄을 원료로 사용했던 시기(PhaseⅠ: 1983~1994), 에탄과 프로판 믹스를 원료로 하는 시기(PhaseⅡ: 1994~현재)를 거쳐, 가스가 아닌 원유(Crude Oil)를 원료로 사용하는 새로운 시대(PhaseⅢ : 2009년 이후)로의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사우디가 이처럼 석유화학 원료를 다변화 하고 있는 것은 순수 에탄 원료 수급이 과거보다 타이트해진 탓도 있지만, 이미 충분한 규모의 에탄 설비가 건설되었다는 판단 하에 산업 다각화 및 고부가가치화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우디에는 Sumitomo와 Aramco의 「Rabigh 프로젝트」와 Dow와 Aramco의 「Ras Tanura 프로젝트」 등의 대규모 정유 연계형 설비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Plastic Conversion Park」는 바로 이들 프로젝트의 진행과 맞물려 추진되고 있다. 정유 연계형 설비에서는 기존 에탄/프로판 설비와는 달리 수십여 가지의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이 생산된다. 이들 제품이 생산되는 공장 부지에 「Plastic Conversion Park」를 건설하고 석유화학 제품을 가공함으로써 석유화학 다운스트림 산업은 물론, 연관 산업까지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이를 통하여 2006년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 1%에 불과한 사우디 플라스틱 가공 산업을 2010년에는 점유율 15%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Plastic Conversion Park」는 ‘투자 기업에게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 제품을 값싸게 공급함은 물론, 전력, 용수, 인력, 운송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면적으로 지원한다’는 개념 자체로만 본다면 일반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계획에서 보여지는 산업 클러스터와 별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사우디의 높은 원가 경쟁력과 세계 유수 기업에서 도입된 높은 기술력의 결합이 석유화학 고부가 다운스트림 분야까지 급속히 확산될 것이라는 점에서 「Plastic Conversion Park」가 세계 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막대할 전망이다<(그림 2> 참조).

 

3.민간 부문의 역할 강화

 

앞서 살펴본 Plastic Conversion Park 구축의 경우 자국 석유화학 산업 다각화/고부가가치를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를 중점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골자라면, 사우디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과제는 ‘자국 사기업(Private Enterprise)의 육성’을 통해 ‘민간 부문’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는 SABIC 등 주요 국영 기업의 지분 일부를 공개하는 등 민영화에 주력하는 동시에 외국기업과의 합작투자를 통해 선진 기술을 도입하는 자국 사기업에게 산업개발기금을 지원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현재 사우디 석유화학 산업의 95%(생산 능력 기준)를 독점하고 있는 국영 기업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민간 기업의 영향력은 2010년 기준 25%까지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로 2004년에서 2009년 사이에 계획된 사우디 설비 투자의 51%는 사우디 민간 기업에 의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들 민간 기업은 과거 소규모 다운스트림 투자에서 탈피하여 점차 업스트림 프로젝트로 대형화 되고 있는 추세다. 사우디의 사기업 Sahara, Sipchem, Tasnee 가 합작으로 정유 연계형 설비 투자에 나선 「Sahara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뿐만 아니라, 이들 사기업은 사우디 석유화학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Kayan 프로젝트」만 하더라도 사우디 최초로 에탄, 프로판, 부탄 혼합 원료를 사용함으로써 PE/EG와 같은 범용 석유화학 제품은 물론, 아세톤, DMF(합성피혁원료) 등의 기초 화학 제품, BPA 및 PC 등의 고부가 석유화학 제품까지 생산해낼 전망이다.


현재 사우디에는 Sipchem, Sahara Petrochemical, Lujian Industrial, Kayan Petrochmemical, National Polypropylene 등의 다양한 사기업이 고부가 석유화학 제품은 물론 특수 분야로까지 사업을 확대해가면서 석유화학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그림 3> 참조).

 

●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성장이 세계 석유화학 산업에 미치는 영향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우디의 석유화학 산업은 높은 원가 경쟁력과 막대한 오일 머니를 기반으로 급속도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원료다각화로 일부 에틸렌 유도품에서 석유화학 전 제품으로 생산 범위를 확대하고 있음은 물론, M&A와 합작투자 등을 통해 글로벌 메이저 기업의 기술력을 흡수함으로써 고부가가치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다운스트림 가공 영역으로까지 전선을 넓히고 있다. 과연 이와 같은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성장은 세계 석유화학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사이클 진폭은 줄어드는 반면, 기업 간 수익 격차 확대


우선, 석유화학 산업의 경기 변동성이 줄어들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철강, 제지 등 다른 기초 소재 산업과는 달리 석유화학 산업에는 7~8년에 걸친 뚜렷한 경기 사이클이 존재해왔다(<그림 4> 참조). 이는 기본적으로 지역, 원료, 기업 간 기술력 격차 등의 다양한 요인이 석유화학 제품의 제조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모든 기업이 거의 동일한 제조 원가 구조를 가진다는 것은 곧 시장 수요가 급증하는 호경기에는 생산능력 증가율이 급증하고, 역으로 불경기에는 급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동 저가 원료 활용의 확대는 이러한 석유화학 산업의 투자 패턴에 변화를 가져온다. 기업 간 제조 원가 격차가 확대되면서, 중동 투자 기회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은 호경기에도 적극적으로 설비 증설에 나서기 어렵다. 반면, 높은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중동 기업들은 불경기에도 설비 투자를 지속할 수 있어 경기 상황에 따른 설비 투자 급증/급감 현상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석유화학 전체 경기 사이클의 진폭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경기 사이클은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완만한 형태를 보일 전망이다. 그러나 원가 경쟁력 확보 여부에 따라 개별 석유화학 기업간의 수익성 격차는 과거보다 오히려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구조 조정 가속화


한편, 기업간 수익성 격차 확대는 결국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 조정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중동 기업의 영향력이 에틸렌 유도품 등의 일부 범용 제품에만 영향을 미칠 경우, 제품 다각화나 제품 고부가가치화 등을 통해 중동 기업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있지만, 중동 석유화학 산업 발전이 본격화될 경우 근본적인 경쟁력 확보 없이는 어떠한 대책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최근 구미 기업들이 적극적인 구조 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미 이러한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GE가 GE Plastics 매각을 통해 EP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한 결정이나, BASF가 추가적인 범용 석유화학 투자를 중단하고 엥겔하드(촉매) 및 Degussa의 건설용 소재 부문 인수를 통해 스페셜티 분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에 매진하고 있는 것, Nova와 Ineos가 SM/PS 부문 합병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기업의 사업 철수, 포트폴리오 전환, 업계 구조 조정 등은 일반적인 성장 전략의 일부라기 보다는 과거 극심한 불경기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특단책에 가깝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유가가 유지되는 한 석유화학 기업이 중동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막연히 유가 하락을 기대하기 보다는, 우리 기업들도 급격한 산업 변혁기를 오히려 체질 강화를 통한 성장의 계기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동 등의 저가 원료 확보 기회에 참여함으로써 업스트림 기반의 새로운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한다거나, 지역을 뛰어넘는 M&A를 통해 핵심 제품 중심으로 북미/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세계 석유화학 기업들이 아시아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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