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두뇌유출 지수는 지난 10년간 빠르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두뇌유출로 인한 성장잠재력 약화를 막기 위해서는 아일랜드 등에서와 같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990년대 이후로 세계경제의 화두가 되어 온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우리 나라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가장 극적인 사례로는 시장 규율과 감독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행된 자본개방이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것을 거론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와 논란이 되고 있는 “탈한국” 현상, 즉 기업과 자본, 인력의 해외 유출 역시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큰 흐름이 낳은 결과들 중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 공동화 심화 우려
기업과 자본이 보다 좋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개방경제에서는 당연한 움직임이며, 개도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첨단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경제에서는 고임금과 각종 정부규제 등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대두하고 있다. 최근 관세청의 발표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5년간 해외로 생산설비를 옮긴 기업의 숫자가 4,1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섬유, 의복, 신발 등의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저임금을 제공하고 있는 후발 개도국들로 이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술 및 자본집약적 기업들마저 해외로 이전하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은 당초 저가의 범용제품을 중심으로 중국과 동유럽 등 새로운 시장 개척과 북미, 유럽 등으로의 수출우회로 확보를 위한 생산기지 설립 등이 주된 이유였으나, 최근에는 국내 주요 기업들이 핵심연구개발 및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을 추진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기업의 채산성 악화, 정치사회적 혼란과 반기업정서 등 기업환경 악화는 중소기업, 대기업을 막론하고 국내 제조업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도 탈한국화
제조업 공동화는 국내의 생산기반과 고용창출능력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신규 국내투자의 부진으로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의 해외 이탈뿐만 아니라 가계의 소비에서도 유사한 탈한국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 증가와 해외여행 기회의 확대로 인해 소비자들의 해외 제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내수의 규모도 커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해외에서의 소비는 내수보다 더한층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왔다. 지난 2000-2002년은 정부가 정책적으로도 내수 부양을 촉진하는 등 내수의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앞지르던 시기였는데, 당시 해외에서의 소비는 내수보다도 더 빠르게 증가하였다. 이는 국제수지 상의 여행수지 항목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되는 바, 1993년에는 해외여행비의 내수 대비 비중이 1.6%에 불과하였으나, 그 뒤로 빠르게 증가하면서 1997년에는 2.6%까지 늘어났다. 외환위기 직후 환율의 급등, 해외여행의 급감으로 인해 이 비중은 1998년에는 1.4%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다시 상승하여 2001년 3분기에는 3%를 돌파한 이후 2003년 3분기 현재 3.3%를 기록하고 있다(<그림 1> 참조). 1993년 이후 10여년 만에 내수 대비 해외여행비의 비중이 두 배로 커진 셈인데, 같은 기간 동안 해외여행비는 7억 달러에서 24억 달러로 증가하여 3배가 넘게 증가했지만, 반면 내수는 440억 달러에서 737억 달러로 채 두 배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소비의 탈한국화 역시 대외 개방과 해외여행의 확대로 인한 필연적인 현상이지만, 동시에 우리 경제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내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특정 지역으로 집중되고 있는 이민과 유학 열풍
최근 TV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한 캐나다 이민 상품의 매진 해프닝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이민과 해외유학 또한 중요한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취업난과 부동산가격의 폭등, 사교육비 가중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환경이 악화되면서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는 반대로,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해외 이민자수는 전체적으로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를 구할 수 있는 1994년 이후 우리나라의 이민자수를 살펴보면, 1994년 15,676명에서 점차 감소하여 2002년에는 11,966명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전체적으로는 감소세이지만 지역별로 살펴보면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해외 이민은 북미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캐나다로의 이민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1994년 우리 전체 이민의 75% 정도를 차지했던 북미 지역으로의 이민은 2002년에는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의 전체 이민자수가 감소하면서 미국으로의 이민도 1994년 9,214명에서 2002년 5,712명으로 감소하였으나 캐나다 이민은 1994년 2,221명에서 2001년 6,901명으로 피크를 기록한 이후 2002년에는 4,737명을 기록하였다(<그림 2> 참조).
이처럼 북미, 특히 캐나다 지역으로 이민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이민의 상대적인 용이함과 더불어 캐나다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이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과외 열풍으로 인한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은 중요한 이민 동기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특수한 교육 현실은 최근의 이민 열풍뿐만 아니라 해외 유학 현황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민의 경우와 유사하게 해외 유학의 경우에도 북미 지역이 전체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미국이 최대 유학대상국으로써 전체 유학생의 29%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유학 선호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일반화된 것이지만,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전체 재미 유학생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인도(12.7%), 중국(11.0%)에 이어 3위(8.8%)를 점하고 있다. 인도나 중국, 그리고 우리보다 다소 낮은 비중(7.8%)을 점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하여 우리의 인구가 절대적으로 작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미국유학 규모는 우리의 교육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뇌 유출의 양면적 효과
일반적으로 유학은 해외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로써 모국의 경제 발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민, 탈한국화 흐름과 결합되면서 교육을 마친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정착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두뇌 유출(brain drain)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두뇌 유출이 부정적인 효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저개발국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노동력이 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두뇌 유출은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함으로써 임금 상승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두뇌 유출이란 해외로의 이주를 의미하며, 여기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모국에서 상류층에 속하거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두뇌 유출이란 상대적으로 고급교육을 받은 인적 자원의 유출을 의미하게 된다.
선진국에 정착한 모국의 두뇌는 해외 네트워크의 확보, 소득의 모국 송금 가능성, 이후 귀국시의 활용가능성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두뇌 유출이 통상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일어나는 사정을 고려할 때, 이는 개도국의 인적 자원이 선진국으로 이전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뇌 유출은 고급 인적자원의 누출을 통하여 성장잠재력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모국의 재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일반적으로 조세 구조는 경제활동이 활발한 청장년층이 주요 납세자가 되어 유년층과 노년층을 부양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유년기를 모국에서 보낸 고급 인력들이 청장년층이 되어서 선진국으로 이주하여 경제활동을 영위하게 되면 선진국의 납세자가 되는 것이며, 그들의 유년시절에 직간접적인 교육비용을 부담한 모국의 납세자들은 결국 선진국의 인적 자원 양성을 위해 세금을 부담한 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인도의 두뇌유출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인도인들은 전체 인도인구의 0.1%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소득은 인도 전체 국민소득의 10%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만약 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았더라면 소득은 그보다 줄어들었겠지만 인도의 국민소득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인도 재정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임을 의미한다(Mihir Desai, “The Fiscal Impact of the Brain Drain: Indian Emigration to the US”, 2002).
악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두뇌유출 지수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지수는 각국의 두뇌유출 현황에 대한 자료를 하위 항목으로 포함하고 있다. 두뇌유출 지수(brain drain index)는 0에서 10 사이의 값을 갖는데, 고급교육을 받은 두뇌가 해외로 나가려는 경향이 강할수록 0에 가까운 값으로 표현된다. 주요국들의 1992년 이후 두뇌유출 지수의 추이를 살펴보면, 두뇌유출 문제가 거의 없는 나라는 미국으로써 시종일관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반대로 정치사회적 환경이 불안한 러시아와 남아공화국 등은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중국의 경우에는 7~8% 대의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환경이 열악해 해외 이주를 희망하는 고급 두뇌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두뇌유출 지수는 낮게 나타나고 있다(<표> 참조)
2002년 현재 우리나라의 두뇌유출 지수는 4.6으로써 조사대상인 50개국 중에서 40위에 머무름으로써 두뇌유출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과거 지수의 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대 초반만 하여도 우리나라의 두뇌유출 지수는 7을 넘어서는 등 비교적 상위권이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왔다는 점에서 더한층 우려된다고 할 수 있다. 조사대상인 50여 개국 중에서 이처럼 두뇌유출 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나라는 많지 않다. 일본의 두뇌유출 지수도 “잃어버린 10년”을 반영하여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왔으나 우리보다 그 정도는 덜하여 2002년 현재 6.2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두뇌유출 지수가 크게 악화되었으나 그 하락폭은 우리보다 작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하여 하락추세로 접어든 이후 현재까지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데 악화 폭이 조사대상국 중에서 가장 크다는 점에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두뇌 유출은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에 치명적
두뇌유출은 앞에서 살펴본 제조업 공동화, 해외 소비의 증대 등과 더불어 우리 경제의 탈한국화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소비의 증대는 경제의 개방화에 따라 필연화되는 것이기도 하며, 제조업 공동화 역시 제조업의 상대적인 쇠락과 서비스업의 비중 일반적 증대라는 경향에 비추어볼 때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산업으로의 진출이 올바른 대응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름아닌 인적 자원이며, 따라서 고급 인적자원의 해외 이전을 의미하는 두뇌 유출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재미 유학생은 우리 경제의 성장을 위한 귀중한 인적 자원이며, 학위취득 이후 연구기관 등에 정착하는 재미 학자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도 우리 경제의 잠재적인 인적 자원의 고급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 4> 참조). 1993~ 2002년 동안 재미 외국인 유학생 증가율이 평균적으로 2.8%인 반면 재미 한인 유학생 증가율은 연평균 6.3%를 기록하였으며, 1994~2002년 동안 재미 외국인 학자 증가율의 연평균은 5.6%이지만 재미 한인 학자의 증가율은 훨씬 높은 11.3%로 나타났다(US Institute of International Educa-tion 자료를 이용하여 계산). 그러나 우리의 경제 및 사회 환경이 고급 두뇌를 활용하기에 불충분하다면, 이는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두뇌 유출을 억제하고 고급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기업환경의 개선이 대안
지난 10여 년간 두뇌유출 지수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온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크게 개선된 나라들 중에서는 아일랜드와 인도를 들 수 있다(<그림 3> 참조). 1990년대 초반만 하여도 아일랜드의 두뇌유출 지수는 2 부근에 머물렀으나 중반 이후 크게 상승하여 2002년 현재 7을 넘어서고 있다. 인도의 경우에도 2-3을 오르내리던 두뇌유출 지수가 1990년대 후반부터 개선되면서 6에 달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경우는 대외 개방과 글로벌화를 통하여 선진 해외기업의 적극적 유치에 주력한 결과 고급인력을 위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된 것이 두뇌유출 지수의 개선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인도의 경우 역시 1990년대 말부터 IT 산업을 중심으로 한 선진기업의 유치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작금의 세계경제 하에서 인적 자원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필연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악화되고 있는 두뇌유출 현황을 개선하고, 고급의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며, 아일랜드와 인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첩경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에 있다. 정부 규제의 선진화와 글로벌 스탠다드의 준수, 이를 통한 기업환경의 개선이야말로 두뇌유출 문제와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