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소비구조 재검토 필요하다 에너지 소비구조 재검토 필요하다

배민근 | 2004-10-15 |

국제유가가 50달러 선에 머무르면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우리나라의 에너지소비증가세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10월 1일 역사상 처음으로 유가가 50달러 선을 돌파했다. 뉴욕상품시장(NYMEX)에서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의 11월 인도분 가격이 50.12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곧바로 베니스에 모인 BP, 토탈 등 주요 석유회사 경영진들은 현재로서는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같은 시각 워싱턴에 모인 G7 재무장관들의 증산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아직까지는 향후 유가가 50달러보다 낮은 수준에서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는 예측이 좀 더 우세하며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원인 미국경제 역시 지금의 고유가에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을 계기로 에너지 문제에 대한 우리나라 산업과 국민경제가 근본적인 전환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세계적인 수준의 에너지소비 증가


1990년에서 2003년 사이 우리나라의 에너지소비증가율은 연 10.2%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OECD 국가들의 평균인 1.8%의 여섯 배에 달한다. 국내총생산 대비 1차에너지 총공급량(TPES/GDP, PPP 기준)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그림 1> 참조). 이러한 현실은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 외에도 1980년대 이후 약 10년 동안의 저유가 추세와 시장추이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통제가격제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에너지수급 및 산업구조가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이나 대만과의 격차는 주요산업의 부가가치 대비 에너지소비효율 면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개선의 여지가 적지 않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산업용 유류 및 전력에 대해서는 낮은 세율 및 가격을 유지하는 반면, 일반 소비자용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고수해 왔다는 통념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경향은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지난 40년 동안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특히 이러한 상대가격의 차이가 산업구조 및 체질이 에너지를 과다 소비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왔다는 우려를 낳은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산업용 중유와 고급무연휘발유의 국제가격을 비교해 보자. 국제에너지 기구(IEA)가 펴낸 에너지가격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급무연휘발유 가격은 비교대상 국가들보다 다소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그림 2> 참조). 반면 산업용 중유는 국내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한 저가격정책을 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에너지 가격체계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특별히 에너지 다소비형으로 만들었다는 징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근대화의 핵심인 공업화에 대한 열망이 심화되면서 정부가 중화학공업의 육성을 강하게 추진한 측면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3>은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1인당 총에너지소비량과 국내총생산 1,000달러에 투입된 에너지 양(TOE)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TOE(Tons of Oil Equivalence)는 여러 가지 단위로 표시되는 에너지원들을 원유 1톤, 즉 7.41배럴이 발열하는 열량인 1,000만㎘를 기준으로 표준화한 단위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1인당 총에너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한편, 국내총생산 1,000달러에 대한 에너지 투입량은 두 차례의 감소(에너지효율의 증가를 의미함)추세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첫번째 감소구간은 1980년대 전반의 중화학공업 구조조정기와 대체로 일치하며, 두번째는 1997년 외환위기 및 IMF 구조조정 이후 현재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 기간 동안 제조업 분야의 상당수 업체들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겨가는가 하면, IT산업이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천으로 급부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생산설비와 많은 에너지 투입을 요구하는 철강, 석유화학 등의 중화학공업은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경쟁력의 핵심적인 한 축을 맡고 있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서 제조업 분야의 에너지효율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했는지 알아보자.

 

제조업 분야에서 점진적인 개선은 뚜렷해


산업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이른바 에너지다소비업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26.3%에 이르고 있다. 에너지다소비업종이란 부가가치 1백만원을 창출하는 데 드는 에너지 양이 1TOE 이상인 업종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요업), 비금속광물 등이 주요한 주목대상이다. 이 수치는 경제개발 초창기에 비해서는 획기적으로 낮아졌으나, 독일의 21.8%, 일본 20.4%, 미국 18.6%와 비교하면 아직 상당히 높은 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에너지수입의 해외의존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1994년 이후 줄곧 97% 전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산업구조나 체질이 에너지수급관련 해외리스크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돼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제조업 전체의 에너지효율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은행 국민소득계정의 부표에 나오는 경제활동별 국내총생산과 요소소득 통계를 보면, 에너지소비량이 많은 ‘섬유 및 가죽’, ‘목재, 종이, 출판 및 인쇄’, ‘석유, 석탄 및 화학제품’, ‘비금속광물 제품’, ‘금속제품’이 전체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4> 참조). 보다 직접적인 증거로 에너지 관리공단이 집계한 각 개별 업종의 부가가치 $1,000당 에너지사용량도 1998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그림 5> 참조). 에너지를 많이 투입하는 업종을 중심으로 제조업 분야의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의 높은 에너지소비 증가는 산업부문보다는 상대적으로 승용차나 가전제품의 보급확대 및 중, 대형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수송부문이나 가정, 상업부문에서의 증가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의 부문별 평균에너지소비증가율을 보면, 수송부문이 6.59%, 가정 및 상업부문이 5.93%, 그리고 공공, 기타부문이 6.56% 로 4.08%를 기록한 산업부문의 증가율보다 모두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소비의 고급화, 대형화 추세가 높은 에너지소비증가율의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았는데, 같은 기간 동안 국민총소득이 16.5% 포인트 증가하는 동안 승용차 등록대수는 28.4%, 그리고 룸 에어컨 생산대수는 무려 230.8% 포인트나 증가했다. 기술이 발달하고 에너지 효율에 대한 제도적 장려가 이루어져 가전기기와 주택의 에너지효율은 과거에 비해 분명히 개선되었지만, 그것의 가시적인 효과가 에너지소비 자체의 양적 증가에 압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다소비산업은 펄프, 시멘트, 철강, 석유화학 등 소재를 생산하는 대규모 공정산업으로 극소수의 과점적 원천기술 공여자가 전세계에 기술을 공급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그 제조공정이 서로 유사한 특징이 있으며, 에너지효율의 높고 낮음은 생산기술 자체의 차이보다는 생산설비가 얼마나 새 것이냐에 의해 좌우된다. 이들 업종의 생산시설이 상대적으로 노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에너지효율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음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이들 에너지다소비산업들은 대체로 소재산업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전자, 기계 등 우리나라 조립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이들 산업의 축소를 거론하는 것은 큰 설득력을 얻기가 힘들다. 다만 최근 들어 중동 국가들이 서방 기업들과의 합작으로 대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장기적으로 국내 업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듯하다. 현실적으로는 기기와 설비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정과 매뉴얼의 개발, 그리고 노후 보일러 및 요(窯), 로(爐)의 교체와 전동기의 고효율화가 시급하다.

 

에너지 효율이 이제는 환경경쟁력으로


고유가 시대에 직면한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원유수입의 중동지역에 대한 의존도는 7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대단히 높다. 특히 미국-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원유의 수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욱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른바 ‘중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수입선다변화 노력은 당연하지만, 보다 기본적으로는 지역과 무관한 전방위에 걸친 에너지 외교활동 전반에 걸친 확장이 요구된다. 지난 15년 사이에 중동지역을 방문한 우리나라 외교장관이 단 세 사람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너지외교의 우선순위 자체가 대단히 낮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러시아 유코스사 사태나 나이지리아의 부족간 대립, 베네수엘라의 정치불안 등은 원유수급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아랍 민족주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기적으로 가장 많은 잠재생산여력을 보유한 중동 지역에 대한 높은 석유의존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에너지 외교의 역량 또한 가장 집중되어야 하는 지역이다.


에너지효율과 관련해서는 환경보호차원에서의 도전도 거세다. 우리나라는 1992년 리우 회의에서 채택된 기후변화협약에 1993년에 가입했으며,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는 온실가스배출감소 및 배출권 거래제도, 공동이행제도, 청정개발체제 등의 이른바 ‘교토 메커니즘’를 골자로 하는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가 정식 채택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의무이행대상국에서는 제외된 상태이지만, 의무이행을 촉구하는 국제적인 목소리가 결코 작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축기준에 맞추기 위해 국내총생산의 감소까지도 감소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유럽 각국은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수입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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